- 핀테크·빅테크도 문제…“직원 만족도 높은 조직문화 갖춰야”
# 서울 소재 데이터베이스 관리 기업에 재직 중인 A씨(31)는 최근 여러 시중은행으로부터 이직제의를 받았지만 숙고 끝에 거듭 고사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조직문화와 호봉제, 코딩보다 필기시험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큰 걱정거리로 다가와서다. 무엇보다 안정성이 떨어지는 전문계약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금융권 수뇌부가 연초부터 디지털 전환을 천명하고 있지만 해당 분야의 인력 충원이 원활하지 않은 이유다.
대안으로 꼽히는 빅테크·핀테크 기업도 높은 업무강도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보수적 조직문화 걸림돌…“적응 우려에 이직 포기”
디지털 직군이 금융권 이직을 포기하거나 중도 퇴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수적인 조직문화와 엄격한 업무시스템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은행·보험·증권·저축은행·카드사·자산운용사 등 업계 상위 39곳 금융회사로부터 받은 연간 채용 실적과 계획에 따르면 이들 금융사의 올해 채용 인원(예정·미정 포함)은 2619명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42% 줄었고, 3년 전보다 65% 감소했다.
5대 시중은행의 채용실적은 더 처참하다. 디지털분야 수시 채용 중인 신한은행은 0명, KB국민은행은 9명,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16명, 24명에 그쳤다. NH농협은행은 340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3년 연속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연봉과 직급을 호봉제로 운영하고 있다. 연공서열에 따라 진급과 급여가 좌우되는 만큼 능력과 성과가 직원 처우에 반영되기 어렵다.
따라서 고급 인력에게 능력에 어울리는 연봉을 안겨주려면 전문계약직 채용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안정감 있는 직장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전문계약직으로 3년가량 근무하면 무기계약직 전환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이때도 노조 동의가 필요하다.
또 ‘은행권 모범채용규준’에 의거한 필기평가, 채용단계마다 거쳐야 하는 감사절차 등 융통성 없고 길게 늘어지는 채용 절차 등이 문제로 꼽힌다.
여기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와 비대면 확산 등으로 올해 상반기 채용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핀테크·빅테크도 문제…“직원 만족도 높은 조직문화 갖춰야”
야심차게 금융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빅테크·핀테크 기업도 급성장을 거듭하는 만큼 조직문화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 1분기 각 계열사에서 총 340명을 신규 채용했다. 2018년 120여명, 2020년 3월 말 438명에서 현재 1000명까지 인력이 급증했다. 채용인력은 대부분 IT관련 인력이다.
하지만 조직문화와 업무강도에 대한 비판은 내·외부 곳곳에서 제기된다.
기업 정보 플랫폼 잡플래닛에 따르면 비바리퍼블리카의 대한 직장 만족도는 2016년 5점 만점을 기록한 뒤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3.1점에 머물렀다. 기업 추천율 역시 2016년 100%에서 지난해 45%까지 내려갔다.
이러한 변화는 독특한 조직문화와 높은 업무강도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잡플레닛에 올라온 리뷰에 따르면 “24시간 근무하는 듯한 느낌의 슬랙”, “워라밸이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는 최악의 직장이 될 수 있음”, “근무 강도가 상상 이상. 산전수전 겪은 경력직들이 6개월 못 버티고 퇴사함”, “복지를 다 쓰지 못할 만큼 바쁨” 등 높은 업무강도를 지적하는 의견이 다수 보인다.
독특한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현재 토스는 ‘스트라이크 제도’와 ‘3개월 수습기간 제도’를 운영 중이다. 팀에서 해당 직원과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면 ‘스트라이트’를 부여하고,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부여 받으면 퇴사를 권고받는다.
또 경력직도 예외 없이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피드백 세션’에서 혹평 받으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헤서는 “상호감시 피드백 구조라 몇 명이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하나 내보낼 수 있다”, “신입 3개월 리뷰는 얼마나 고인물들 맘에 들게 알랑거리는지 보는 기간임”, “이미 업계에 소문이 자자하여 사람이 부족” 등의 혹평이 이어졌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이에 대해 “업계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사내 분위기 역시 다 같이 열심히 하자는 분위 아래 똘똘 뭉쳐있다”며 “다수가 만족하는 근무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 금융권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사내 만연해 있는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업계 전반이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연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