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경칼럼] 동학 개미와 공매도 포비아 : 잔혹사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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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경칼럼] 동학 개미와 공매도 포비아 : 잔혹사의 고리
  • 이승제 기자
  • 승인 2021.05.11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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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증시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단어는 ‘공매도 포비아(phobia·공포)’일 것이다. 동학 개미는 물론 언론, IB(투자은행)들의 관심이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찌감치 외인의 공매도 대상으로 지목된 HMM은 올들어 삼성전자와 엇비슷한 국민주 반열에 올랐다. 셀트리온, LG디스플레이 그리고 바이오주에 대한 동학개미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달 초 공매도가 14개월 만에 재개됐다. 언론은 지난달부터 요란스럽게 공매도 재개를 둘러싼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초점이 ‘공매도 재개로 한국 증시와 종목들이 받을 충격’에 놓인 건 당연했다.

공매도 표적이 될 종목들을 ‘찍는’ 작업도 분주했다. 과거 ‘악질적인’ 외인의 공매도로 시장이 출렁이고 먹잇감이 된 종목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친 트라우마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열흘가량 지난 지금, ‘시장이 공매도 재개의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 공매도 세력은 예상대로 HMM, 셀트리온 3형제(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오제약), LG디스플레이, 신풍제약 등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들은 공격 초반 휘청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한 방어능력을 뽐내더니 일제히 상승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특히 마지막까지 고전하던 셀트리온의 경우 반발 매수세의 유입으로 공매도 공격을 뿌리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지난주 셀트리온의 공매도 수익률은 -4.7%를 기록했다. 공매도 공격에도 주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공매도 청산물량이 쏟아지며 주가 상승에 탄력을 더하게 된다. “공매도 별 거 없네”는 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외인 공매도 세력의 기가 꺾였을 거란 낙관은 말 그대로 기대일 뿐이다. 외인들은 지난 한 주 동안 가벼운 잽을 날렸다. 외인 공매도 세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동학 개미라는 주요 변수가 등장한 만큼 ‘탐색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동학 개미는 지난해부터 기관과 외인의 매도 공세 속에서도 굳건하게 장을 떠받치는 저력을 발휘하곤 했다.

사람도 그렇듯 기업도 들추면 약점을 잡히기 마련이다. 든든한 자금 동원력과 한참 앞선 정보력은 공매도 세력의 핵심 무기다. 먹잇감으로 고른 종목을 철저히 분석한 뒤 그 종목의 미래를 안갯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회사가 이렇게 자신하지만 결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곤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 집중 포화한다. 이렇기 때문에 공매도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바이오 종목은 공매도 세력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신약·신제품 개발 등은 성공을 100% 자신하기 어렵기 마련인데, 공매도 세력은 이 허점을 교묘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과거 셀트리온은 '악의적인’ 공격의 대표 사례다. 속수무책 당하는 기업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오죽 했으면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당시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제발 우리 회사를 공매도 세력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겠는가.

공매도 세력은 교활하기까지 하다. 과거 2000년대 중후반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를 두고 외인 공매도 세력이 펼친 ‘작전’은 상식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그때 공매도 세력의 든든한 우군을 자청한 게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이었는데, 이들은 틈날 때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미래에 재를 뿌리며 그야말로 ‘저주’에 가까운 리포트를 내놓았다. 그러면 공매도 세력은 기다렸다는 듯 공매도 폭탄을 떨어뜨렸고 하이닉스반도체는 ‘개미들의 무덤’으로 뒤덮였다.

#외인 공매도 세력은 왜 동학 개미의 눈치를 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동학 개미가 예전의 개미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공매도 세력이 연합전선을 짜고 공격하면 속절없이 무너지던 오합지졸이 아니라는 얘기다. 동학 개미는 훨씬 똑똑해지고 보다 대담해졌다. ‘외인·기관의 쌍끌이 매도공세’에 과감히 맞서는 뚝심마저 갖췄다.

‘스마트해진’ 동학 개미들의 매매 패턴은 예전 개미와 사뭇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과거 ‘공포에서 사고, 확신에서 팔아라’는 전략은 외인들이 즐겨 쓰는 것이었다. 특정 종목에 대한 불신과 비관론이 팽배해서 투매 광풍이 불면(공포), 망설임 없이 매수할 때다. 종목에 대한 찬양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면(확신), 주저 없이 내다 팔 때다. 이는 ‘(긍정) 뉴스에 팔아라’는 증시 격언의 심화 버전이다.

외인들은 반복해서 공포를 조장하고 확신을 퍼트리며 개인들을 농락했다. 예전 개미들은 매번 이 전략에 속절없이 당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종목 분석력이 크게 열세였고 이 때문에 확신을 갖는다 해도 오래 지속하기 힘들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어 “내가 뭘 바꿀 수 있겠어”라는 푸념만 뇌까릴 뿐이었다.

공매도 재개는 동학 개미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분명 예전에 비해 덩치도 뚝심도 커졌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미국의 게임스탑과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다. 하지만 곧 한국판 게임스탑을 목격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여러 환경은 충분히 조성돼 있으니 말이다. 다만 가장 중요한 걸 잊어선 안 된다. 뚝심 있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별은 바라볼수록 더 반짝인다. 사람도 그렇다. 동학 개미가 사랑하는 주식도 그럴 것이다.

이승제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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