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자의 난' 이후 쪼개진 현대그룹...이후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등 고속 성장
- 정몽구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정의선 '3세 경영' 시대 열어
지난 3월 20일,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20주기를 하루 앞두고 장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비롯 범(汎)현대 오너일가가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옛 자택에 모였다.
정 명예회장 별세 이후 흩어졌던 범현대가 분위기가 정의선 회장을 중심으로 다시 화합하는 모양새다.
아산 정주영 창업주 별세 후 20년간 범현대가(家)는 대한민국 산업을 주도하는 명문가로 발돋움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2000년 ‘왕자의 난’으로 쪼개지기 전 계열사 16개, 자산 31조723억원 규모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범현대가는 자산 300조원에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했다.
범현대가의 중요 인물로는 정주영 창업주에 이어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그리고 현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으로 평가된다. 재계에서는 정주영-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지는 '도전정신 DNA'를 성장의 핵심 키워드로 꼽는다. 이제 정의선 회장의 미래차에 눈길이 쏠린다.
◆ 그날
정주영 창업주 별세...'왕자의 난'과 현대그룹의 분열
2001년 3월 21일.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그는 급성호흡 부전증으로 서울중앙병원에 입원중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헌 현대건설 이사회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 등 가족 20여명과 사장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했다.
정 명예회장의 장례식은 5일장으로 치러졌다. 빈소는 서울 청운동 자택에 마련했고 영결식도 청운동 자택에서 치렀다. 장지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으로 정해졌다.
같은 달 25일 영결식에서 고인은 대형 멀티비전으로 중계된 생전 육성녹음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생각"이라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까지 정 명예회장은 '도전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정 명예회장의 영결식에는 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조문단을 보냈다. 영결식 하루전인 24일, 당시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조문단 4명이 직항편으로 서울에 와 청운동 빈소를 방문, 조문했다.
북한 조문단은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력, 민족대단결과 통일 애국사업에 기여한 정주영 선생의 사망에 즈음하여 현대그룹과 고인의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전원문과 영전에 바치는 조화를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현대측은 서울 청운동 빈소와 북한을 포함, 국내.외에 설치된 110개의 분향소에 모두 33만여명이 조문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북한의 조문은 정 명예회장의 대북사업 때문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1993년 일선에서 물러난 후 대북사업에 관심을 쏟았다. 1998년 6월 16일, '통일소'라고 불린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는 이벤트를 연출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호화 유람선 금강, 봉래호를 이용한 금강산 관광을 성사시켰다. 1999년에는 현대건설이 평양에서 체육관 건설 기공식을 가졌고 정주영 사후인 2003년에 완공한 뒤 류경정주영체육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정 명예회장은 말년에 '왕자의 난' 등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정 전 회장은 별세 1년 전, 아들 몽구-몽헌회장과 함께 3부자 퇴진을 발표한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자녀간 불화가 문제였다. 정몽필(전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사장, 1934 - 1982), 정몽구(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근(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몽우(전 현대알루미늄 사장, 1945 - 1990), 정몽헌(전 현대그룹 회장, 1948 - 2003), 정몽준(현대중공업 대주주, 전 FIFA 부회장,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윤(현대해상화재 회장), 정몽일(현대기업금융 회장)등 8남 1녀(정경희)가 이들이다.
정 명예회장은 병든 몸을 이끌고 자식들 간 불화를 해소하고자 노력했지만 화합을 보지못하고 별세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가는 현대, 현대백화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으로 분열됐다.
한편, 정 명예회장은 1946년에 현대자동차, 1950년에 현대건설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기업인의 길에 나섰다. 1971년부터 1987년까지 현대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정 전 명예회장은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저력을 보였다. 정 명예회장은 1992년 국민당을 창당,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1998년부터 현대건설 대표이사 명예회장을 맡기도 했다.
◆ 그후
정주영 타계 20년 후 범현대가 성장세 '괄목'...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등 질주
아산 정주영 창업주가 일군 현대그룹은 2000년 ‘왕자의 난’으로 쪼개지기 전 계열사 16개, 자산 31조723억원 규모였다.
범현대가는 아산 타계 20년이 지난 현재 자산 300조원에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했다.
범현대가 기업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성장세가 단연 돋보인다. 2000년 3월 정주영 창업주는 5남인 고(故)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려 했다. 그러나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이에 반발해 자동차 관련 10개 계열사를 가지고 현대그룹에서 분리, 독립했다.
현대차그룹은 이후 20년간 초고속 성장을 이어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도요타와 폭스바겐, 르노닛산, 제너럴모터스(GM)에 이어 완성차 판매량 기준 세계 5위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449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현대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현대차그룹의 자산은 31조723억원이었으나 지난해는 248조612억원으로 20년만에 8배 성장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매출 103조9976억원, 영업이익 2조3947억원, 순이익 1조4224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계열 분리 당시 대규모기업집단 순위가 삼성, 현대그룹, LG, SK에 이어 5위였다. 현재는 삼성그룹에 이어 2위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아들 정의선 회장이 취임하면서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부문에서 지난해 전세계 판매량 4위에 오르며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에서 벗어나 로봇·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으로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카드, 현대차증권, 현대로템 등 계열사만 55개에 달한다. 특히 2011년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을 인수하며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주영 창업주의 6남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주도하는 현대중공업그룹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계열사 30개를 거느린 매출 48조원의 재계 9위 그룹이다. 조선 분야에서 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재계 7위로 도약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2002년 당시 총자산이 11조원이었는데 작년 말 75조원까지 성장했다. 또한 인수 마무리 단계인 두산인프라코어까지 편입되면 총자산은 단숨에 81조원까지 상승한다. 이는 재계서열 6위인 포스코(총자산 80조원)를 넘어서는 규모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 이외에도 정유·건설기계 등 연계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최근 정몽준 이사장의 아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을 중심으로 로봇·인공지능(AI)·수소 등 신성장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정주영 창업주의 3남 정몽근 명예회장이 성장시킨 현대백화점그룹도 유통 분야에서 큰 성장을 거뒀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패션과 리빙, 건자재 분야를 포괄하는 종합유통기업으로 매출 20조원의 재계 21위다. 정몽근 명예회장은 2006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장남 정지선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현대그룹은 적통을 이어받았지만 유동성 위기로 현대증권(현 KB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현 롯데택배), 현대상선(현 HMM) 등을 연이어 매각하며 매출 3조원대의 중견그룹으로 내려앉았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주사로 계열사는 11개가 있다.
이외에도 범현대가의 '방계'로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과 조카가 이끄는 HDC그룹, KCC그룹, 한라그룹 등이 있다.
◆ 그리고, 앞으로
정주영-정몽구 '도전정신' 이어받은 정의선, 미래 모빌리티 기업 '주목'
범현대가는 아산 정주영 창업주의 2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3월 24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옛 자택에 모였다.
청운동 자택은 2001년 정몽구 명예회장이 상속받은 뒤 2019년 3월 정의선 회장에게 소유권을 넘겨줬다.
이들 범현대가는 함께 모여 제사를 지냈다. 아산의 부인 변중석 여사의 기일은 8월 16일이지만 지난해부터 제사를 합치기로 한 데 따라 이날 같이 지냈다.
현대차 측은 "올해 제사는 코로나19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참석자별로 시간대를 나눠 순차적으로 제사를 지내고 나오는 방식으로 간소하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이날 제사에는 정 명예회장의 장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부인과 함께 참석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대표이사도 참석했다.
정 명예회장의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조카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을 비롯해 손자녀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대표이사 사장,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남편 선두훈 대전선병원 이사장도 자리했다.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사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어머니인 이행자 여사와 부인인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는 참석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병환으로 불참했다.
아산의 기일을 전후로 범현대가 가족과 그룹 임직원이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찾아 진행하던 참배는 코로나19 확산 분위기를 고려해 축소했다. 정의선 회장과 다른 그룹들은 21일 전후로 선영을 찾았다.
범현대가 ‘아산 20주기 추모위원회'는지난 3월 22일부터 4월 2일까지 ‘청년 정주영, 시대를 通(통)하다'라는 주제로 현대차그룹 계동사옥 로비에서 서산 간척지 사업, 서울 올림픽 유치, 포니 개발, 제2한강교·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이 담긴 사진을 전시하고 다큐멘터리 영상도 상영했다. 사진전 공간 내에 아산의 집무실을 재현하고 포니 실차와 포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콘셉트카 '45'도 함께 전시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서울 현대백화점 본사에서 ‘불굴의 도전 정신’을 주제로 추모전을 열었다.
이제 범현대가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중심으로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2월 현대차 사내이사에서 물러났고, 3월에는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을 정의선 회장에게 넘겼다. 지난해 10월에는 그룹 회장직을 물려줬다. 현대모비스 지난 3월 24일, 사내이사에서도 물러나며 그룹 내 계열사의 모든 직함을 내려놨다.
현대차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총수를 정의선 회장으로 변경해달라는 동일인 변경 요청을 해둔 상태다. 오는 5월 공정위가 현대차그룹의 총수로 정의선 회장을 지정하면 현대차그룹의 총수가 21년만에 바뀌게 된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을 물려준 후 정치·외교·통일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달리 건강을 챙기고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그룹 경영에 대한 조언을 하며 조용한 은퇴 시기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대장게실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위해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으며, 입원 4개월만인 지난해 11월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정몽구 명예회장 일가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1길과 유엔빌리지2길 사이에 모여살고 있다. 첫째딸 정성이 이노션 고문, 둘째딸 정명이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부문장, 셋째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이사, 막내아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옆집, 앞집, 뒷집에 모여살고 있다. 정의선 회장의 자택은 정몽구 명예회장 자택과 연결통로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회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정몽구 명예회장을 찾아 문안인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아침 저녁으로 정몽구 명예회장을 찾아 문안인사를 하는 만큼 이 자리에서 그룹 대소사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정몽구 회장이 경영에 대한 조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19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를 설립하며 독자경영을 시작했고, 1977년에는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를 세웠다. 1982년 형 몽필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장자 역할을 해왔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을 맡은 후 대한민국 경제와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위해 끊임 없이 도전해 왔다. IMF외환위기 당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극심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성공적으로 회생시켰고, 2010년에는 현대·기아자동차를 글로벌 톱5 업체로 성장시켰다.
정몽구 회장의 도전정신은 현재 글로벌 자동차산업과 대한민국 경제의 지형을 바꾼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품질경영'으로 대표되는 경영철학은 글로벌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전세계에 고품질의 생산공장을 적기에 건설할 수 있는 표준공장 건설 시스템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
재계 관계자는 "정주영 창업주의 ‘도전 정신’은 범현대가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며 "올해는 고 정상영 KCC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현대가 창업 1세대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3세대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원년이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정의선 회장은 정주영 창업주-정몽구 명예회장의 '도전정신 DNA'를 이어받아 현대차그룹을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시킬 포부를 갖고 있다. 정 회장에게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은 부친인 정주영 회장의 경영 DNA인 뚝심과 도전정신을 이어받아 국내 자동차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큰 족적을 남겼다”며 “지나간 20여 년이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 성장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데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면 정의선 회장은 새로운 미래차 시장에서 아버지가 이룩한 업적을 뛰어넘는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고 말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