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회적 고립에 따른 공동체 상실과 고독의 시대, 대화 상대 갈망하는 대중 심리 저격
아베 야로 원작 만화를 드라마화한 ⟪심야식당⟫(신야쇼쿠도, 深夜食堂, 2009년 데뷔)가 늦은 밤 외롭고 지친 천태만상 현대도시인들의 ‘허기와 마음을 채워주는’ 작고 정겨운 골목식당이라고 한다면, 2021년 지금은 ⟪커피토크(Coffee Talk)⟫가 동네 정겨운 찻집이다. 한 바리스타가 손님들에게 따뜻한 음료를 손수 만들어주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대화 상대가 돼주는 곳이다.
2020년 1월 출시돼 출시 1주년을 맞은 커피톡은 인도네시아에 본사를 둔 독립 게임개발 스튜디오인 토게 프로덕션(Toge Productions, 2009년)이 개발했다. 토게 스튜디오는 컴퓨터 게임 개발 산업의 미개척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탄생했다. 취미 삼아 플래시로 모바일과 웹을 오가는 멀티 장르 게임을 개발해 오던 이 업체는 마케팅과 PR 부서간 창조적 협업을 장려하기 위해 2017년부터 연례 사내 아이디어 세션을 주최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실이 바로 커피토크다. 올초 1월에는 이터랙티브 아츠앤사이언시스 아카데미(AIAS)가 수용하는 연례 제24회 D.I.C.E 대상의 본선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심야식당이 동네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오프라인 식당이라면, 커피토크가 펼쳐지는 무대는 가상 세계 속 캐나다의 시애틀이라는 한 가상 도시에 운영되는 카페다. 심야식당 속 등장인물들이 일상 도심 속에서 마주칠 법한 사실적인 인간군상들이라고 한다면, 커피톡을 찾아와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은 미래 시대에 존재할 법한 요정-바다 괴물-인어 등이 유전자 교차로 탄생한 환타지 캐릭터들이다.
이 카페는 어둡고 야심한 밤 시간 주룩주룩 내리는 비와 냉기를 피해서 실내 온기와 따뜻한 음료를 찾아 들어오는 한 심야 안식처다. 재즈풍 로우파이 칠합(chillhop) 음악이 게임 배경에 흐르며 게임 유저의 심리를 느긋하고 여유있게 조성해준다. 초고해상도 게임이 주류를 이루는 최신 시각 트렌드에 익숙해져 있는 게이머유저에게 커피토크의 1990년대 아니메풍의 한물간 픽셀 아트 미학과 등장 캐릭터들의 기초 표정과 바디랭귀지 변화는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장점이자 매력 포인트는 바리스타와 손님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 교류와 실감나는 대화다. 다양한 손님들이 이 가상 시애틀 커피숍을 찾지만 단골손님들은 주로 뜨거운 음료 한 잔을 시켜 놓고 자신의 신상적 문제거리나 고민을 한탄한다. 덕분에 바리스타는 따뜻한 음료를 제공해 주는 댓가로 바 뒤에서 손님들의 사적 이야기를 엿듣고 정겨운 참견도 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스토리텔링 구조는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구성을 띠며 게임 참관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등장 캐릭터들은 저마다 다른 인생살이, 운명, 문제거리를 안고 산다. 이 게임의 매력은 게임 시나리오에 미리 정해진 대화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커피숍 주인이 되어 다양한 카페 손님들을 대하며 그들과 나누는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을 통해서 손님들의 스토리를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예컨대, 작가로 등장하는 프레야라는 캐릭터처럼 카페 손님들의 사연들을 엿듣고 소설화시킬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바리스타의 재치와 수완에 따라서 이 가상 세계 속의 손님들의 평범한 인생살이는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로 펼쳐 질 수 있다는 말이다. 능동적인 끼가 있는 유저라면 자기의 창조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로써, 수동적 오락 청취자에게는 한 편의 개연성있는 인생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는 세컨드라이프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커피토크⟫의 출시 시기는 절묘했다. 작년 1월 말,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코로나19 확산 대응 록다운 조치가 내려지기 한 달 전이었다. 기묘하게도 이 게임 속에 등장하는 병원입원수속 담당자로 일하다 근무 중 휴식시간을 카페에서 보내는 한 카페 단골 손님은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고 바리스타에게 귀띰한다.
바리스타의 시점에서 게이머는 옆자리 낯선 손님들과 인생 스토리와 따뜻한 인생 충고도 공유할 수 있게끔 손님들을 이어주는 대화 매개자 역할을 한다. 또 바리스타는 이 이야기를 엿듣는 가운데 게임 청취자들이 대화 내용이 맘에 들었거나 동조할 경우 실시간 현금 후원을 받기도 한다. 손님이 재주문할 때에는 카카오로 로긴한 카페 청취자들이 남긴 코멘트를 읽을 수도 있고 청취자들의 피드백과 그 대화 분위기에 따라 새로운 음료를 창조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장기화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문화 속에서 고립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아쉬우나마 사교 테라피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커피토크가 최근 전세계 온라인 게이머들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급속한 성공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사람들이 아무런 형식이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집(제1의 장소)과 직장(제2의 장소) 이외 타인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제3의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타인과의 교류와 사교를 통해서 새로운 정보에 접하고 창조력을 자극하고 영감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억누룰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나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 21세기,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인 제3의 공간으로 갈 수 없다면 가상 디지털 제3공간에서 사교와 인간관계를 주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박진아 IT디자인 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