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윤종원 기업은행장, 2년차 임기도 삭풍 속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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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후] 윤종원 기업은행장, 2년차 임기도 삭풍 속 출발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1.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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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의 출근 저지에 막혀 27일간 취임 미룬 초유의 사태
- 해넘이 열흘 전 임단협 합의···희망퇴직 등 산적한 이슈
- 노조추천이사제, 임금피크제·희망퇴직 등 안건 '난망'
▲ 2020년 1월 29일 취임사를 하고 있는 윤종원 기업은행장 (사진 = 기업은행 제공)
▲ 2020년 1월 29일 취임사를 하고 있는 윤종원 기업은행장 [기업은행 제공]

2020년 1월을 돌아보면 정초부터 가장 자주 회자되던 금융권 수장은 윤종원 기업은행장이다.

윤 행장은 노동조합의 저지에 막혀 27일간 취임을 미루다 1월 29일에야 은행장실에 발을 들였다. 이는 금융권 사상 초유의 일.

허니문은 길지 않았다. 출근 두 달이 채 못돼 노동조합의 은행장 고발이 이어졌고, 한해 노사관계의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임단협은 해넘이 직전, 12월 23일에야 조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소지는 하나도 결론지어진 게 없다. 2020년 고난 끝에 취임한 윤 행장의 임기 2년차도 여전히 삭풍 속에서 출발한다.


 

◆ 그날

출근저지 27일, 금융권 최장 기록 오명


2020년 1월 2일. 기업은행장으로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임명됐다. 내부인사가 수장을 맡아왔던 기업은행은 10년만에 외부출신 인사의 수혈이었다.

윤종원 행장은 행시 27기 출신으로 재무부,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등을 두루 거친 관료다.

특히 윤 행장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 지근거리서 지켜본 것.

그러나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위원장 김형선)는 윤 행장의 임명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바로 출근저지 투쟁에 돌입한다.

새 기관장 선임 전후로 노사간 '기싸움'이야 드문 일은 아니지만, 기업은행의 경우 사태가 점점 확대된다.

노조의 출근저지가 2주 가량 지속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1월 14일 청와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국책은행의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며 각을 세운 것.

VIP의 코멘트에 기업은행지부의 상급단체인 금융노조가 소속된 한국노총도 사태에 개입한다. 기업은행지부의 투쟁에 동참하며 정부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결국 사태는 당정이 기업은행 노사와 설연휴 동안 합의점을 찾으며 일단락된다.

1월 27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윤종원 행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 김형선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등과 함께 회동을 가졌다.

당시 이 원내대표는 사실상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준 발언을 한다. 이 원내대표는 "소통과 협의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당을 대표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향후 은행장 임명절차 개선과 희망퇴직 허용, 노동자추천이사제 도입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막후를 좀더 들여다보면 노동계 입장에서도 사태 악화를 막고 수습할 필요성이 있어보인다.

1월 21일, 한국노총은 새 수장으로 김동명 전 화학노련 위원장을 선출한다. 이보다 한달쯤 앞서 금융노조 역시 박홍배 전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을 새 수장으로 뽑았다. 선출 직후 임기가 시작되는 한국노총과 달리, 금융노조는 이듬해 정기대의원대회부터 임기가 시작됐다.

기업은행 사태 초반 금융노조 위원장으로서 개입했던 허권 위원장은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김동명 위원장과 경합 끝에 패했다.

즉 노동계의 정권교체기에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보다 조직적인 대응이 가능했냐는 물음이 제기된다. 내셔널센터인 한국노총의 입장은 차치하고서라도, 여당과 정치적 긴밀함을 유지하고 있는 금융노조 차원에서도 새 지도부의 임기 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대해 충분한 내부검토가 가능했는지도 의문이다.


▲ 취임식에서 김형선 기업은행지부 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윤종원 기업은행장 (사진 = 기업은행 제공)
▲ 취임식에서 김형선 기업은행지부 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윤종원 기업은행장 (사진 = 기업은행 제공)

◆ 그후

두 달 남짓 허니문, 코로나19 위기 속 도드라진 신뢰 부재


1월 27일, 당정과 노사의 연휴 회동 이후 사태는 분주히 돌아갔다. 이튿날 전 조합원 간담회를 통해 의견수렴을 거친 기업은행노조는 투쟁을 철회하고, 1월 29일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취임식까지 일사천리로 일정이 진행됐다.

특히 지난 2013년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의 13일간 출근저지 이후 금융권 최장 출근저지 기록을 세운 윤종원 행장인데, 첫 출근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여느 기관장의 첫 출근과 취임 못지 않은 '세리머니'가 진행됐던 것.

1월 29일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취임식에선 윤 행장과 김형선 위원장은 행사장 앞줄에 나란히 자리해 긴밀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노사 대표자의 취임사와 축사도 꿀이 떨어졌다.

김형선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환영사에서 "임명부터 취임까지 오랜 시일이 걸렸다"며 "노조 때문에 죄송하다"라고 말머리를 떼었다. 이후 윤 행장에 대해 "이제 가족", "한 배를 타고 있는 미래 동반자"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친구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며 "지난 20여일 간은 마치 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때로는 다투고 토론하며,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이었다"고 환영의 인사를 이어나갔다.

노동조합이 윤종원 행장의 임명에 반대했던 가장 큰 명분은 금융기관의 경영을 맡아본 적이 없었다는 이른바 '자질'에 대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당정청이 윤 행장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많은 칭찬을 들었다"며 "그런 모습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충분히 공감했고, 앞으로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라고 입장을 바꿨다.

한편 이날 취임식은 노조와의 홍역 때문에 약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예상을 뒤엎고 본점 직원과 주요 부서장,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임 윤 행장은 별도로 마련된 회의실에서 기자단과 상견례,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까지 가질 정도로 '본격적'인 행사였다.

하지만 허니문은 불과 두 달 남짓 지속됐다.

기업은행지부는 3월 18일 윤 행장을 근로기준법 및 단체협약 위반 등으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 조치했다.

근로기준법 및 산별 단체협약에 기준근로시간과 초과근로제한이 명시돼 있음에도, 은행이 PC-OFF 프로그램 강제 종료 등을 통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부분이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IBK기업은행의 실적 부진과 함께 경영평가를 받아야 하는 공공기관의 입장,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일선 영업점에 가중되고 있는 노동강도와 실적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미처 신뢰를 축적하지 못한 노사관계가 더욱 상황을 악화시켰던 것이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8년 당기순이익 1조7643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후, 2019년에는 1368억원, 7.8% 하락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순이자마진(NIM)의 하락세는 2019년 분기별로 1.90%, 1.89%, 1.81%, 1.74% 등 하락세가 유지됐다.

기업은행은 2019년 경영실적을 발표하며 "급격한 시장금리 하락으로 순이자마진이 낮아진 것"이라며 "지속적인 중소기업 지원과 더불어 중기금융 노하우에 바탕을 둔 혁신금융으로 수익성 개선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020년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국책은행으로서 기업은행은 코로나19 지원의 선두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당시 기업은행지부는 "영업점의 경우 하루 수십 건에서 많게는 백여 건의 코로나19 관련 대출 업무를 처리 중"이라며 "해당 업무만으로도 근무시간이 모자랄 정도"라고 말했다.

노사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각자의 목소리만 높였다.

김형선 위원장은 "자금지원 업무에 실적 챙기기까지, 시간이 모자란 직원들은 편법으로 야근하거나 퇴근 후에도 대출서류를 집으로 싸 들고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이며 결과적으로 코로나19 금융지원을 위축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현장의 조합원들이 긴급한 자금이 필요해 찾아온 중소기업, 소상공인에게 이건 '꺾기'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냐는 하소연까지 전해오고 있다"고 성토했다.

'꺾기'는 금융기관이 대출 등의 조건으로 예·적금이나 CD 매입 등을 강요하는 불공정행위를 말한다.

요약컨대, 코로나19 사태로 업무량이 과중해진 상황에서 은행이 실적에 대한 압박을 가하면 일선 영업점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노조의 주장과는 달리 은행은 "오히려 코로나19 관련 업무량 증가를 알고 있고, 그에 따라 경영평가 항목에서 이익과 관련한 부분을 경감하는 등 실적에 대한 압박을 줄이고 있다"고 반박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조치와 지침도 있었고, 정부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전례 없는 조치를 강조하는 와중이라 은행 역시 현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노사의 상반된 주장 가운데 그 진위가 어느 쪽인지를 차치해 두더라도, 전염병의 확산으로 위기감이 현실로 닥쳐오는 형국에서 기업은행 노사의 불협화음은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한편 기업은행 노사는 4월 23일 35개 경영평가 지표 중 ▲일반예금 ▲적립식예금 ▲자산관리고객수 ▲개인교차판매 ▲기업교차판매 ▲제안영업 등 6개 항목의 상반기 평가를 유예하는 내용의 ‘2020년 내부 경영평가 개정’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윤 행장의 고발을 취하했다.
 


자료 = 금융노조 제공
자료 = 금융노조 제공

 

◆ 그리고, 앞으로

첩첩산중, 윤 행장 취임과 함께 열린 공공기관 복마전


코로나19 지원은 2020년 기업은행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였다.

기업은행은 10월말 기준 소상공인 초저금리 특별대출을 약 26만6000개 기업에 7조7800억원 공급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대출 공급 실적은 2019년 10월말 47조9000억원에서 2020년 59조80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20년 임단협은 난항을 거듭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업은행 노사가 단독으로 매듭지을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추후 논의를 지속하기로 일단 덮어둔 모양새라 다시 갈등이 불거질 우려가 크다.

기업은행 노사는 2020년 12월 23일에서야 조인식을 갖고 잠정합의에 이르렀다.

노조는 임단협이 지지부진하자 쟁의행위 절차를 밟고 있었다.

업은행 노조는 지난 15일부터 경영평가 시스템 개선에 대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으나, 사측과의 합의로 1인 시위를 중단하기로 했다. [기업은행 노조]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12월 15일부터 경영평가 시스템 개선에 대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으나, 사측과의 합의로 1인 시위를 중단했다. [기업은행 노조 제공]

2020년 임단협에서 노사가 의견차를 보였던 대목은 영업점 경영평가 제도 개선과 주 52시간 초과근무 문제 등이었다.

특히 경영평가와 관련된 안건은, 임단협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내년도 예산에 올해 임금 인상분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리스크를 노사가 안고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봉합한 것으로 보인다.

주 52시간 초과근무에 관해서도 외부 컨설턴트를 통한 현황 분석과 인력 확장을 통한 업무 분산 등 대책을 마련하는 쪽으로 잠정합의했다.

임기 2년차를 맞는 윤 행장에게는 연말까지 지속된 이슈 외에도, 아직 남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취임 초 노조에 약속했던 노조추천이사제, 임금피크제·희망퇴직 등의 안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조차 난망하다. 앞서 경영평가 이슈가 그러했듯, 공공기관의 특성 상 기재부·공운위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기에 더욱 그렇다.

2021년 2월과 3월 기업은행 사외이사 4명 중 2명의 임기가 마무리된다.

기업은행은 9월 기준 1만3685명의 전체 임직원 중 임금피크 대상직원 수가 670명 가량 된다고 한다. 2021년에는 1000명 가량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금융권 임금피크제는 계륵에서 쐐기로 문제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업은행처럼 국책은행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문제해결은 더욱 요원해 보인다.

사실상 이 문제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완고한 입장이다.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선논의되고 있는 임금피크제 및 명예퇴직 제도 개선에서 "수익구조와 근로조건 등 여건이 다른 공공기관에 일률적인 제도 시행은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금융권 임금피크제를 둘러싸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조직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 지난 8월말 중장년 금융권 노동자들은 각 기관 시니어노조들을 중심으로 '50+금융노동조합 연대회의'를 출범한 바 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씨티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서울보증보험, 한국거래소 등 여덟 곳의 시니어노조가 주축이며 조합원 수는 약 2000여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과제는 중장년 금융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임금피크제 문제 해결과 현실적인 희망퇴직 제도 도입 등의 사안이 핵심이다.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인 산업은행말고도 서울보증보험, 씨티은행, 국민은행도 임금피크제 소송을 진행한다.

기업은행,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한국거래소 등 연대회의 소속 조직 대부분에서 소송에 뛰어들 계획이다.

당사자들에겐 소득과 생계 등 절실한 문제지만 같은 조직 안에서도 후배들이 바라보는 해당 이슈는 제각각의 시선이다.

임금피크·희망퇴직 이슈는 바꿔말하자면 그만큼 조직 내 인사·승진 적체가 극심할 거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선배들을 바라보는 후배의 입장은 곱지만은 않다.

특히 기관을 막론하고 금융권 전반에서 최근 신입 인력들의 '고스펙'이 평준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빠른 승진과 고임금 등 누릴 것을 다 누린 선배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이 이제는 소송까지 불사하며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복마전은 열렸다. 수면 위로 떠오른 난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않고선, 윤 행장의 2년차 임기는 삭풍 속에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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