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와 '안주', 엇갈린 희비 교차...세대별 맞춤 공략 강화
해마다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을 쓰게 마련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이 말이 더욱 실감나는 한 해였다. 그 만큼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다. 유통업계는 더욱 그렇다. 코로나19에 의해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소비 패턴이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업계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대비'와 '안주'의 결과는 뚜렷하게 대비됐다. 바야흐로 '언택트(비대면) 시대'다.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유통업계의 올 한 해를 짚어봤다.
⓵ 백화점·면세점 '공룡의 몰락'
롯데·신세계·현대 등 국내 대표적인 백화점 3사와 대형 쇼핑몰은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주요 백화점 3사는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3분기 누적 매출 1조8920억원, 영업이익 15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4%, 55.4% 감소했다. 나머지 두 백화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면세점의 부진은 더욱 심각하다. 면세점의 주 고객인 여행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신세계디에프는 3분기 영업손실 20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고, 매출도 44.4% 줄어든 4372억원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인천공항 임대료 감면과 면세품 내수판매 등 영업환경이 개선된 점에서 그나마 힘이 되고 있지만, 원상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자칫 면세점 업계의 몰락도 점치고 있다.
⓶ 온라인의 역습 '성장과 진화'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유통업계의 화두는 단연 '온라인'이다.
통계층에 따르면 지난 10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4조24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이 때문에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기업들은 급성장을 이루고 있다. 신진 이커머스 업체 뿐만 아니라 롯데와 신세계 등 오프라인 시장을 주도해온 전통 유통기업 또한 이커머스 채널을 강화하며 온라인 쇼핑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이커머스 채널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쿠팡은 제품 유통뿐 아니라 PB상품군을 넓히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소비자 반응도 좋다.
쿠팡은 또 '쿠팡 플레이'를 앞세워 OTT시장에 진출했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려놓은 것을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선점을 위해서는 진화를 거듭해야 하기 때문이다.
⓷ 편의점, 코로나 ‘반사이익’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편의점과 홈쇼핑은 오프라인 부진 속에 반사이익을 얻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11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온라인 유통업체는 매출이 17% 증가한 반면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2.4% 감소했다.
편의점은 오프라인 유통업체 가운데 '특수'를 누린 업종 중 하나다. 반면 백화점은 4.3%, 대형마트 4.1%로 지난해 대비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편의점은 야간에 식품·음료 매출이 증가했다. GS25의 경우 지난 1월부터 이달 28일까지 주문 도시락 매출액이 무려 920.4% 늘었고, 주문 와인 매출액은 727.7% 급증했다.
곡물 과자 등 유아 전용 간식 매출도 857.1% 증가했고, 이외 블루투스 이어폰, 휴대전화 보조배터리, 충전기 단자 등 소형 가전제품 매출은 172.2%, 페트병 커피는 132% 늘었다.
⓸ 한국은 지금 '배달·배송' 전쟁 중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직접 장을 보는 대신 온라인 유통채널의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급증했다.
이에 쿠팡, SSG닷컴 등 다수의 유통기업들이 총알배송과 당일배송, 새벽배송 등의 서비스를 통해 고객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달음식 시장의 급성장도 눈여겨 볼만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2조7325억원이던 배달앱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2019년 11월 처음으로 월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무려 10조원을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⓹ 유통, 라이브커머스로 ‘날개를 달다’
유통업계에의 또 다른 화두는 ‘라이브 커머스’다. 라이브 쇼핑은 홈쇼핑의 비슷한 형태이면서도 소비자들이 궁금한 사항을 실시간 채팅을 통해 교류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에 각 업체들은 기존 포털사이트의 라이브방송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업계 따르면 올해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는 약 3조원대로 추정되고, 오는 2023년에는 8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⓺ 아마존 국내 진출, 유통업계 '떨고 있나'
오픈마켓 11번가는 최근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으로부터 30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아마존이 11번가와 손잡고 국내 진출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거대 유통기업인 아마존은 국내 유통업계에는 위협적이 존재다. 이에 네이버와 쿠팡 두 업체의 축으로 굳어지고 있는 국내 이커머스 업계가 아마존의 진출로 인해 3강 구도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아마존은 과거 아마존 재팬으로 일본시장에 진출해 1위 사업자가 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국내 시장에서도 글로벌 물류망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입지를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⓻ 친환경·윤리 ‘쇼핑 트렌드를 바꾸다’
올해는 식물성 고기로 만든 음식과 비건 화장품 등을 추구하는 ‘가치소비’가 화제를 모았다. 또 플라스틱 배출량 감소와 탄소 저감을 위해 제품 용기 대체, 업사이클링 제품 개발 등 친환경 소비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식품·외식업계에서는 대체육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뷰티·패션업계에서도 동물성 원료 및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뷰티’, 가죽·모피·울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 재활용품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11월 택배업계 최초로 1톤 전기화물차를 투입했다. 산업 전반에 걸쳐 친환경·윤리 소비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셈이다.
⓼ 식탁 점령한 ‘가정간편식’, 어디까지
올해는 가정간편식(HMR) 소비도 크게 늘었다. 농수산물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HMR 시장 규모는 3조5000억원이었고, 올해는 4조원 이상, 2022년에는 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외식 횟수가 줄어든 반면 가정 내 식사가 늘면서 기존 즉석밥, 국·탕·찌개탕 등 뿐만 아니라 신선재료를 활용해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밀키트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유통업체들의 새벽배송 서비스로 인해 온라인 장보기가 활성화된 가운데, 식품업계는 앞다퉈 다양한 HMR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외식업체는 물론 호텔 레스토랑까지 가세해 HMR과 밀키트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⓽ 재벌가 세대교체 ‘젊어진 유통’
연말 임원인사를 조기 단행한 유통기업들이 50대의 젊은 인재들을 선임하는 한편 임원 규모를 대폭 축소한 점도 눈길을 끈다.
신세계그룹은 백화점부문 전체 임원 중 20% 정도를 줄였다. 이 가운데 75%는 세대교체가 됐고, 25%는 임원 보직을 없앴다.
신세계디에프 대표이사로 신세계 영업본부장인 유신열 부사장(1963년생)이 내정됐고, CVC(벤처캐피털) 사업을 추진하는 신설 법인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대표이사엔 문성욱 신세계톰보이 대표이사(1972년생)가 내정됐다. 이마트에는 강희석 이마트 대표(1969년생)가 SSG닷컴 대표를 겸직하게 됐다. 송현석 신세계푸드 대표와 손정현 신세계I&C 대표는 1968년생이다.
롯데그룹도 50대 초반의 젊은 임원들을 선임했다. 총 600여명의 인사 가운데 30%가량이 물러났고, 10%가 새로 임명됐다.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이사(1970년생),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1970년생), 이진성 롯데푸드 대표이사(1969년생) 등이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총 48명에 대한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임대규 현대홈쇼핑 대표이사 사장(1961년생), 김관수 현대L&C 대표이사 부사장(1963년생), 이재실 현대백화점면세점 대표이사 부사장(1962년생)이 각각 승진했다.
CJ그룹도 주요 계열사의 대표를 교체했다. CJ제일제당 수장에는 최은석 지주 경영전략총괄(1967년생)이 내정됐다. 기존 강신호 제일제당 대표(1961년생)는 CJ대한통운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외 강호성 CJ ENM 대표(1964년생)가 자리를 거머쥐었다.
⓾ 끊이지 않는 갑질 '진상 대기업'
올해 역시 갑질을 일삼은 기업이 사그라들지 않아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롯데하이마트는 최근 대규모 유통업법 위법행위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0억원을 부과받았다. 납품업체 종업원을 마치 자사 직원처럼 부리며 업무에 동원하고 납품업자로부터 '판매특당' '시상금' 명목으로 160억원을 받아 하이마트 지점에 전달하는 등 논란이 됐다. 또 회식비나 우수직원 시상비 등으로 사용한 사실도 적발됐다.
지난 11월에는 헬스앤뷰티숍 '랄라블라'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이 납품업체에 부당 반품을 강요하고 상품대금을 감액한 것을 이유로 10억5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 조사 결과 GS리테일은 납품업자들에게 '2015년·2016년 헬스·뷰티 시상식' 행사비용 명목으로 약 5억3000만원을 상품대금에서 공제한 뒤 대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수의 납품업자들에게 직매입한 약 98억원어치의 상품을 놓고 정당한 사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반품을 강요했다.
이처럼 기업들 사이에서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선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공정위 등 관련 기관에서는 다양한 지침을 마련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김지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