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2차전지 소재사업에만 비철사업 의존하는 모습 뚜렷...'신사업 투자확대'는 아직도 넘어야할 산
현대제철 수소사업으로 비철강사업 시동...여력 없어보이는 동국제강
통신업계 벤치마킹 필요...비철강사업 추진은 반드시 필요하고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이어야
많은 철강업계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철'의 전성시대는 끝난 지 오래며, 다시는 호황기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가득하다. 한 때 최고 유망 굴뚝산업으로 명성을 떨쳤던 철강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하향산업으로 가고 있는 철강업의 현재 위치를 생각할 때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의 과감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철강사들이 처한 현실과 배경, 각사의 선택과 전망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철' 축제는 끝났다①]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업계 '10년 암흑기'로 고전
['철' 축제는 끝났다②] '진정한 위기의 시작' 철강업이 도태되는 진짜 이유는
['철' 축제는 끝났다③] 포스코든 현대제철이든 안변하면 '도태'한다
철강업계가 안고 있는 가혹한 경영 환경은 이들로 하여금 필연적인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철강업만으로는 지속 성장이 가능한 기업을 기대할 수 없어졌기 때문에 포스코 등은 비철강 사업들로 눈을 돌렸다. 실제 포스코는 비철강사업을 늘리기 위해 정준양 회장 시절부터 다양한 사업들에 도전해왔다.
포스코 비철강사업 실패의 역사...다른 업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문제는 그동안 포스코의 비철강사업 역사를 보면 사실상 실패에 가까웠다는 데 있다. 포스코가 비철강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정준양 전 회장 시절부터다. 정 전 회장은 비철강 부문을 키우겠다는 각오와 함께 각종 인수합병을 통해 외형을 늘렸다. 이에 2008년 104개였던 포스코의 국내외 계열사, 지분투자 법인은 2014년 325개까지 늘어났다.
무리한 투자는 곧 위기로 되돌아왔다. 정 전 회장은 산토스CMI 인수를 강행, 수백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냈다. 다른 비철강 부문 사업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정 전 회장은 무리한 투자를 강행했다는 이유 등으로 검찰에 조사를 받는 신세로 추락했다.
정 전 회장의 문어발식 확장은 권오준, 최정우 회장까지 이어지는 구조조정의 역사를 만든다. 정 전 회장 다음으로 취임한 권오준 회장은 계열사를 줄이는 구조조정에 들어가느라 신성장 사업에 신경쓸 겨를이 별로 없었다. 최 회장도 그동안 잘못 투자해 온 사업들을 정리하는 데 주력했다.
포스코는 2018년 합성천연가스(SNG·Synthetic Natural Gas)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이 사업은 정준양 회장 때인 2011년 시작됐는데, LNG와 석탄가격 상승으로 사업성이 떨어져 2018년 사업을 중단했다. 포스코는 SNG 사업중단으로 8777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지난해 페로실리콘(Fe-Si) 생산공장과 압축연속주조압(CEM) 등을 매각하거나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약 2200억원의 손상차손을 추가로 반영했다. 이 사업도 철강부원료를 직접 생산하기 위해 2011년 시작됐는데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결국 매각됐고, 포스코는 1400억원의 투자금 대부분을 손실로 떠안았다.
포스코는 지난해 4월 13년간 지속해온 마그네슘 사업도 접었다. 포스코는 전남 순천시 해룡산단에 있는 마그네슘 공장의 매각을 검토하고 추진했으나 구매하려는 업체가 없어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포스코는 2007부터 2016년까지 917억원을 투자해 연간 600㎜의 협폭 판재 670톤, 2000㎜ 광폭 판재 6400톤을 생산하는 설비를 구축하고 가동해왔으나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었고, 수요예측에 실패해 11년간 적자를 내왔다.
최정우 회장은 2018년 취임 후 100대 개혁과제를 정하고, 취임 100일을 맞은 2018년 11월에는 2030년까지 철강, 비철강, 신사업 수익 비중을 각각 40%, 40%, 20%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 3분기 기준 그룹의 철강, 비철강, 신성장 사업 수익 비중은 각각 52%, 45%, 3% 수준으로 3년 전 발표 당시와 지금 비중이 달라진게 별로 없다.
포스코가 이러하니 다른 철강사들은 비철강 사업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전문제철소 역할로 나온 업체이니 만큼 다양한 비철강 사업을 당초부터 펼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고, 동국제강은 2010년대 중후반 사옥 매각, 후판 공장 매각 등 구조조정에 바빠 미래사업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2021년을 목전에 뒀음에도 철강사들의 비철강사업 도전은 아직까지는 보여준 게 없다는 평가가 '명확한' 표현이다.
포스코, 2차전지 소재사업에만 비철사업 의존하는 모습 뚜렷...'신사업 투자확대'는 아직도 넘어야할 산
비록 여러 실패의 역사가 있었지만 포스코는 비철강사업을 키울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다시 한번 비철부문 강화를 위한 비전을 선포했다.
최근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철강산업 메가트랜드'로 ▲뉴모빌리티 ▲도시화 ▲디지털화 ▲탈탄소화 ▲탈 글로벌화를 꼽고 고성능, 다기능 친환경 강재를 개발하고 2차전지 소재사업 등을 강화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포스코는 액화천연가스(LNG)사업, 2차전지소재사업, 식량사업 등을 미래 먹거리로 정하고 해당 사업에 투자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최 회장은 2차전지 소재사업을 2030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의 20%, 연매출 23조원 규모로 키워 그룹 성장을 견인한다는 방침이다.
연임을 고려하고 있는 최 회장이 3년 전 취임 당시 강조한 '신사업 투자확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다. 그리고 비철사업으로 아직 보여준 게 없는 상태에서 2차전지 소재사업에만 지나친 장미빛 청사진을 그리며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스코가 미래를 책임질 비철강 부문으로 꼽는 2차전지 소재사업은 사실 신사업이 아니다. 정준양 회장이 처음 물꼬를 텄고, 사업을 시작한 지 무려 8년이 넘었다. 권오준 전 회장 시절 때도 차세대 먹거리로 포스코가 애지중지 키워온 사업이다. 권오준 회장 시절 2차전지에 들어가는 양극재 생산설비를 증설하기 위해 2020년까지 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최정우 회장은 2차전지 사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지난해 4월 포스코켐텍과 포스코ESM을 통합해 포스코케미칼을 신설했다. 최근엔 2차전지 사업 확장을 위해 담당사업인 포스코케미칼의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결정했다.
그러나 최정우 회장 취임 후 3년이 지난 지금도 2차전지 소재사업의 핵심인 포스코케미칼의 실적은 답보상태다. 매출은 2018년 1조3836억원, 2019년 1조4838억원, 2020년 1조5807억원(전망치) 등으로 매년 1000억원씩 늘고 있을 뿐이고, 영업이익은 2018년 1063억원, 2019년 899억원, 올해에는 650억원으로 되려 줄어들고 있다.
포스코 계획대로 2차전지 소재사업 등 신사업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 그러나 포스코는 높은 비전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실적부진으로 공격적인 투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중단기 투자집행 계획을 내놓을 때만 해도 올해 투자규모를 8조원으로 제시했지만 올초 6조원으로 낮췄고, 지난 7월에는 코로나 여파로 다시 4조7000억원으로 낮췄다.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비전 선포를 난무하며 희망론을 논하기 보다 실제 비철사업에서 구체적 실적을 내놔야 하고, 보다 과감한 비철강 사업 전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포스코를 보면 10년 후 20년 후 비철, 신사업 등 비전만 쏟아내고 보여준 것은 많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사업 시작한지 10년이 되가는 2차전지 소재사업을 가지고 아직도 신사업을 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2차전지 소재사업을 미래사업으로 정했다면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포스코가 수소 사업을 새로 추진하려는 점은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이다. 최 회장이 최근 그룹사 전사운영회의에서 그린수소 생산과 수입처 모색 등 다양한 형태의 수소 사업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제철 등 다른 기업들이 수소사업 진출을 공식화한 상황에서 이제서야 사업을 검토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늦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제철 수소사업으로 비철강사업 시동...여력 없어보이는 동국제강
지난해 4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냈던 현대제철은 올해 2분기에서야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현대제철은 올해 2월 단조사업 분할, 6월 당진 공장 전기로 열연설비 가동 중단, 10월 순천 공장 컬러강판 설비 가동 중단 등 비주력사업 정리에 집중해왔다. 이런 가운데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의 수소전기차 비전에 발맞추는 신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현대제철 안동일 사장은 최근 중장기 사업 비전을 밝히며 "수소사업이 미래 신성장사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며 "수소생산 및 친환경에너지 부문에 참여해 세계 최고의 친환경제철소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향후 수소 사업 분야를 미래 신성장 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수소 생산·유통시설 확대 구축 △주요 사업장 FCEV 도입 및 수송 차량 확대 적용 △수소를 활용한 친환경 연료전지발전 시스템 구축 등을 발표했다. 실제 현대제철은 수소생산과 수소전기차 핵심부품인 금속분리판 생산 능력을 확대하며 수소경제 사회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친환경차 고강도강과 함께 수소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중장기적으로 시설을 추가로 확충해 수소 생산능력을 기존보다 10배 늘어난 연 3만7200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약 18만대의 수소전기차를 운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의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재활용해 2016년부터 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수소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금속분리판도 현대제철에서 만들고 있는데, 현재 1만6000대 수준에 3만대 늘어난 4만6000대까지 생산능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에 종속된 기업으로써 다양한 비철강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상황에서 차강판 전문제철소 비전만 갖고 있던 현대제철이 수소라는 새로운 비전으로 신사업을 도모하는 것이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차원에서 바람직한 변화라는 평가다. 하지만 현대제철의 수소관련 매출액은 아직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당장 재무구조 개선에 큰 기여를 할 수 없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동국제강은 아직 비철사업 등을 전개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동국제강은 그동안 혹독한 구조조정 세월을 거치며 지난 2016년 재무구조 약정을 조기졸업했고, 지금까지 영업이익을 안정화하는 데 주력하기 바빴다. 제일 잘하는 고급 컬러강판 투자를 확대해 시장을 선도하는 초격차 전략을 펼치고 있다. 동국제강은 부산공장에 내년 하반기까지 약 250억원을 투자해 연산 7만톤 규모 컬러강판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철강업황이 구조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앞으로 비전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동국제강 역시 신사업 진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동국제강은 영업이익에서는 선전하고 있지만 매년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동국제강이 강소기업으로써 입지를 굳히기에는 컬러강판 집중전략이 맞을 수 있으나 향후 100년 기업을 바라본다면 다양한 비철분야 신규사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통신업계 벤치마킹 필요...비철강사업 추진은 반드시 필요하고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이어야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철강업 부문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업체다. 포스코는 10년째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선정됐다. 현대제철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0위다. 이러한 굴지의 철강사들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다음 100년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비철부문 강화가 필수적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비수익사업 정리하고, 수소 관련(현대차), 전기차 배터리 소재(포스코) 등의 비철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지만 철강업 위기 도래에 대처하기에는 영 부족해 보인다. 보다 과감한 신규사업 진출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다른 사업군인 통신업체들의 생존을 위한 변화를 철강업계가 벤치마킹할 필요성도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3사는 비통신사업 육성에 올인하고 있다. 국내 통신3사가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실상은 영업이익률 5~6% 대의 벽을 못넘고 5년간 정체해 왔다. 요금 규제로 인한 수익 저하, 경쟁 심화에 따른 휴대폰 지원금 등 마케팅비 과다 지출, 5G 인프라 투자비용 증가 등이 꼽힌다. 인구 감소로 내수시장 성장 가능성도 낮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통신업체들은 비통신사업 육성에 목을 걸었다. 올해 3분기 통신사들은 양호한 실적을 냈는데 비통신 신규사업들이 힘을 내준 덕분이다. 통신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무선사업 성장세가 정체된 반면, 통신3사가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 보안, 커머스, 스마트홈, AI/DX 등 다양한 신사업들이 올해들어 성과를 내고 있다. 통신3사는 비통신 사업을 키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으며, 이를 통해 SK텔레콤과 KT의 경우 비통신 사업부문 매출 비중이 40%까지 올라왔다. 2025년까지 통신과 비통신 매출 비중을 5:5까지 만드는 것이 목표다.
물론 B2C 기반인 통신사들과 B2B 기반인 철강업체들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다만 통신사들이 처한 상황이 철강업계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들처럼 적극적으로 신규사업 추진에 달려들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상황인데도 철강업계는 굴뚝산업 특성 때문인지 너무 변화에 더디게 대응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 것은 포스코든 현대제철이든 철강업계의 공통사항인 만큼 비철사업을 키우기 위한 확실한 의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고 과거의 호황이 다시 오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존 잘하는 제품군 중심으로 철강사업을 꾸려가되 비철강사업을 대폭 키워야 하고, 이러한 사업 추진에 있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적극성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연계된 AI, 5G, 스마트공장, 미래 모빌리티 등 다양한 사업영역에 철강업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유심히 살펴 사업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국헌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