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 미국 ITC 최종판결 연기
코나EV 화재 원인이 배터리 자체결함일 경우 현대차가 막대한 구상권 청구 가능성
신학철 부회장 임기 중 일어난 악재...리더십과 위기타개능력 진정한 시험대 올랐다
현재 재계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드는 업체가 있다면 바로 LG화학이다. 국민연금의 LG화학 배터리 부문 분사 반대,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전 연기, 자사 배터리를 탑재한 코나EV 화재 등 굵직한 악재 세가지에 휘말렸다. 세가지 중 어느 하나도 '회사의 존립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사건'에서 빠지지 않는다. LG화학 신학철 대표이사 부회장이 어떤 리더십으로 위기를 극복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첫번째 악재: 국민연금 배터리 부문 분사 반대...결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첫번째 악재는 국민연금공단의 배터리 부문 분사 반대 결정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오는 30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배터리 부문 분사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28일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어 LG화학 분사 의결권 행사 방향을 논의하고 '반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분할계획의 취지와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지분 가치 희석 가능성 등 국민연금의 주주 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일부 위원들은 이견을 제시했다고도 덧붙였다.
LG화학 최대주주는 지주회사 LG로 3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국민연금이 10%대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이고, 외국인이 40%, 개인투자자가 12%, 기관이 나머지 8%, 정도를 갖고 있다. 당초 최대주주인 ㈜LG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0%를 넘었기 때문에 가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국민연금의 반대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나 통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안건 통과를 위해서는 전체 발행 주식의 3분의 1 찬성과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확정적인 찬성측 우호지분은 최대주주인 ㈜LG의 30%로 발행주식의 1/3 찬성 요건은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10%)과 개인주주들(12%)의 반대표가 우세한 만큼 참석 주주의 2/3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압도적 지지가 필요한 상황. 외국인 지분의 찬성 비율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분사가 최종 결정되는 셈이다.
지난달 17일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분리해 LG에너지솔루션을 출범하겠다고 밝힌 이후 논란이 계속 이어져왔다. LG화학을 소유 중인 주주들이 배터리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 것인데 배터리 부문을 분사하면 '단팥 없는 찐빵' 이 된 격이라며 반발한 것. '물적 분할을 취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가 대거 반대하지 않는 이상 분사가 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되나, 만에 하나 표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LG화학의 배터리 부문 분사는 물거품이 된다. 특히 이번 건으로 잃어가고 있는 일반 주주들의 신뢰를 LG화학이 앞으로 어떻게 회복시킬 것이냐도 문제다.
두번째 악재: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 미국 ITC 최종판결 연기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이 연기된 것도 악재로 꼽힌다.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ement)을 내렸다. ITC는 당시 영업비밀침해 소송 전후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증거 훼손 및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모독 행위 등을 했다고 봤다. 이 때문에 LG화학의 손쉬운 승소를 예상하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ITC는 지난 26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최종 판결을 오는 12월10일로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당초 지난 10월5일로 예정됐던 최종 판결이 연기된 10월 26일에서 또 다시 연기된 것이다. 연기 사유에 대한 ITC의 특별한 설명은 없었지만 SK이노베이션의 이의신청을 받아 들여 판결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ITC가 최종 판결을 두 차례나 연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인데, 그만큼 이번 소송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은 "ITC가 앞서 1차로 21일 판결을 연기한 데 이어 추가로 45일이라는 긴 기간을 다시 연장한 사실로 비춰 본 사건의 쟁점을 심도있게 살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입장을 밝혔는데, 내심 SK이노베이션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LG화학은 "최근 ITC에서 (기일이) 2차 연장되는 다른 케이스들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등에 따른 순연으로 보인다"며 조기패소 판결이 바뀔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SK그룹의 계열사인 SK하이닉스가 국내 기업 M&A 사상 역대 최고액인 10조3000억원을 주고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인수한 것이 배터리 소송전에서 SK이노베이션에 유리한 영향을 준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 내 공장 건설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SK이노베이션을 미국이 퇴출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인데, 실제 영향 여부를 떠나 LG화학으로서는 반갑지 않은 분석인 것 만큼은 확실하다.
배터리 소송전 해결책의 하나로 양사의 합의가 꼽힌다. 하지만 합의금을 두고 상당한 입장차를 거듭하면서 사실상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LG화학의 승소가능성이 높게 점쳐지지만 이례적 경우라 할 미 ITC의 판결의 두 차례 연기 자체가 벌어진 만큼 조기패소 결정이 뒤집힌 적 없다는 전례 역시 깨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세번째 악재: 코나EV 화재 원인이 배터리 자체결함일 경우 막대한 구상권 청구 가능성
코나EV 화재 역시 최근 대두된 심각한 악재다. 코나EV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총 14대가 화재사고에 휘말렸다.
코나EV는 작년 7월 캐나다에서 주차 중 화재가 접수되고 같은 해 9월 오스트리아에서 주행 중 불이 나는 사고가 확인되는 등 해외에서만 그동안 총 4건의 불이 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10월 17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주민자치센터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고 등 10건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나EV 화재가 잇따르자 현대차는 지난 10월 8일 부랴부랴 리콜을 진행했다. 코나EV 2만5000여대를 대상으로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업데이트한 뒤 과도한 셀 간 전압 편차나 급격한 온도 변화 등 배터리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배터리를 교체해주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8일 코나EV 리콜을 발표하며 배터리 화재에 무게를 뒀다. 국토부는 차량 충전 완료 후 코나 전기차에서 고전압 배터리의 셀 제조 불량으로 인한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LG화학은 곧바로 “국토부가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했다”며 발표 일체를 부정했다.
현재 코나EV 화재사고는 현재 당국 주도로 현대차, 현대모비스, LG화학 등의 합동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르면 11월 조사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셀 쪽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조상의, 결합상의 문제인지가 정확히 이목이 쏠리는 것은 책임소재 유무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는 코나EV 리콜비용으로 6000억원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교체 범위가 넓어지게 되면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배터리 자체결함임이 입증될 경우 현대차는 배터리 교체비용 대부분을 구상권을 통해 LG화학에 청구할 수 있다. 구상권 행사 규모에 따라 회사가 심각한 영업이익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사안이다.
더욱이 현대차는 코나EV가 아닌 세타2 엔진 리콜비용 충당금을 2조원이나 실적에 반영하면서 올해 3분기 313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0년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후 처음으로 분기적자를 낸 것이다. 배터리 결함으로 판명나면 실적 개선이 시급한 현대차가 구상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칫 LG화학의 실적에 상당한 타격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신학철 부회장 임기 중 일어난 악재...진정한 시험대 올랐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가지 악재는 신학철 부회장의 임기 중에 일어난 일이다.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은 신학철 부회장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철 부회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3M의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해 샐러리맨 신화같은 인물로, 지난해 3월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정식 취임했다.
부임 후 신학철 부회장은 공격적으로 LG화학을 이끌어왔다. 신 부회장은 2024년까지 LG화학을 글로벌 톱5 화학회사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2024년까지 매출 59조원을 달성하고 배터리 사업의 매출을 전체의 50%인 31조 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배터리 생산능력을 2021년까지 120GWh 규모로 높이는 투자를 결정했고, 중국 지리자동차와 배터리공장 합작법인 신설하는가 하면 전기배터리 생산공장 부지확보를 위해 폴란드 가전제품 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2019년 7월엔 경상북도와 구미형 일자리 양극재 생산공장 투자협약도 맺었다.
이러한 공격적인 경영방식은 SK이노베이션과 배터리 소송도 불사하게 만들었다.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 건으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 등에 제소할 당시 막대한 소송비용과 시간을 우려해 소 제기를 말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신 부회장이 관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양사의 소송비용만 8000억원에 달한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문 분사도 신 부회장의 작품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 14일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전지 사업에서의 구조적인 체계 구축을 통한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지 사업부문의 분할을 결정했다"며 "전지 사업은 독립 법인으로 출범함으로써 전지 사업의 특성에 맞는 최적화된 조직 구성을 통해 보다 빠른 의사결정 체제 구축과 운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추후 다양한 재정 확보방안을 통해 성장을 위한 동력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주들은 반발했고, LG화학은 오는 2022년까지 1주당 1만원 이상의 현금배당을 추진하겠다고 공시하는 등 주주달래기에 나섰지만 현재 정황으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분위기다.
신 부회장은 지난 5월 LG화학 인도 공장에서 스티렌 가스 누출로 인근 주민 1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리더십이 첫번째 시험대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왔다. 얼마 안가 LG화학은 전 세계 37개 사업장에서 고위험 공정·설비 긴급 진단을 마치고 총 590건의 개선사항을 도출하고, 총 810억원을 들여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속한 후속방침으로 첫번째 위기를 잘 막았다는 평가다.
재계에선 부임 2년이 다 되가는 신학철 부회장의 리더십과 위기타개 능력이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분석한다. 세가지 악재를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신학철 호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전망한다.
재계 관계자는 "신학철 부회장이 LG화학을 공격적으로 이끌면서 상당한 성과를 내왔는데 최근들어 세가지 중대한 악재가 겹쳐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특유의 경쟁심과 투쟁심으로 악재들을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신학철 호가 꽃을 피우게 되겠지만 아닐 경우 주주들의 외면을 받는 기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국헌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