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 언론인 한스 바이스와 클라우스 베르너는 지난 2001년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글로벌 대기업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나쁜 기업 -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Das neue Schwarzbuch Markenfirmen)』을 펴내 충격을 주었다.
2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나며, 이들 글로벌 기업의 '나쁜'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위장이 필요했다. '나쁜 기업'들은 사회 공헌을 늘리고, 다양성을 끌어안으며,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국내 진출한 외국계 은행 중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는 한국씨티은행(은행장 박진회)이 비슷한 세월동안 한국인들에게 비쳐진 모습은 어떠한가? 이제는 많이 줄어들어 3500여명 수준인 한국씨티은행 구성원들에게는 과연 어떤 직장인가? 3회 시리즈로 알아본다.
한미銀 출신 부행장 無
한국씨티은행의 출범은 2004년 11월로 본다. 1983년 설립된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인수된 시점이다. 하지만 규모가 큰 한미은행의 연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얼마전까지 다동 빌딩이 본점이었다.
하지만 은행뿐만 아니라, 기업조직에 있어서 꽃이라고 볼 수 있는 임원들의 면면을 보면 한미은행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단지 출신이 어디냐를 떠나서 씨티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부행장급에선 한국의 은행 영업점 경력이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실제 은행이란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과는 괴리감이 크다.
직장인들에게 있어서 '승진'이란 큰 동기부여다. 단지 보상이 늘어나는 것을 떠나, 조직이 자신의 역량과 필요를 인정했다는 사인이기 때문이다.
여타 대기업들과 비교하면 은행은 임원승진에 대한 꿈을 꾸는 조직이었다. 수많은 은행장이나 임원들이 신입 행원 교육에서 "꿈을 가지라"고 독려했던 것처럼 말이다.
관리직만 67%...20대가 없는 은행
하지만 씨티은행의 현재 인사적체 현실을 들여다보면 도저히 낙관적인 기대를 하기 어렵다.
그동안 주요 시중은행을 포함해, 은행 조직의 인사적체는 꾸준히 문제제기됐다.
타행들이 다양한 자구노력을 통해 다시 인력구조를 정상화하는 지금, 씨티은행은 답보상태다.
표면적으로 관리직급의 인원이 하위직급보다 비대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797명이 관리직이고 874명이 행원급이다. 이러다보니 "4급 수석을 십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현실이다.
관리직이라고 해서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게 아니다. 행원이 처리할 일을 여전히 이들이 계속하고 있다.
문제의 시발은 지난 2011년 이래, 무려 9년 동안 신입 공채가 없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수시채용이 가뭄에 콩 나듯 있었지만, 주로 변호사나 MBA 출신 등 전문계약직 채용이었다.
그래서 한국씨티은행은 20대가 없는 조직이다. 대졸 이상만 채용하니, 2011년 대학을 졸업하고 24살에 입행한 신입 여직원도 30대 중반에 들어선다.
관리자를 제외하고 조직의 평균 연령은 46세~47세, 1975년생이다. 4급 수석만 700명~800명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씨티은행은 국내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지난 2014년 이후 희망퇴직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대신 그동안 없었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타행들이 임금피크제 이슈가 별반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희망퇴직 규모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정리해고 당했던 IMF 즈음과는 달리, 최근 은행 구조조정은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상자들이 만족할만한 보상을 쥐게 되면서 오히려 희망퇴직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 변화상이다.
어찌됐든 이와 같은 변화는 인력구조의 선순환을 펌프질한다. 선배들이 나가는 만큼 신입들이 필요하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