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언론사인지 안 봐, 그냥 다 네이버 뉴스지. 기사 내용보다 댓글에 더 영향을 받는 것 같아.”
최근 술자리에서 한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이었다. 기자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반적’ 이야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여론 형성에 있어서 네이버ㆍ다음으로 대표되는 ‘포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이를 부정할 이는 별로 없다.
포털이 온라인 공간을 이용한 ‘공론의 장’이 된다면 환영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대중의 의견이 포털에 모이고 있을까’란 질문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대중의 여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실시간검색어(실검) 순위, 연관검색어, 댓글, 뉴스배치, 랭킹뉴스(뉴스 순위) 등 다양한 부분에서 ‘조작’의 의혹이 끊이질 않는다.
피해는 상당하다. 포털의 영향력이 높은 만큼 악영향도 지대하다. 악플의 칼날은 너무도 날카롭다. 연예인의 목을 쥐고 흔든다. 베스트 댓글의 내용에 따라 같은 내용의 기사라도 형성되는 여론의 결이 갈린다. “포털은 병들었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포털을 통해 형성되는 여론에 조직적 조작이 개입, 정치적ㆍ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가 숱하게 포착되곤 했다. ‘국정원 여론 조작’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도 이와 비슷한 ‘검색어 조작’ 사건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동부지검 사이버수사부는 지난 10일 프로그램 개발업체 대표 A씨와 바이럴마케팅 업체 대표 B씨를 구속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혐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이들은 전국의 PC방에 게임 관리 프로그램을 납품하면서 악성코드를 심었다. 이른바 ‘좀비 PC’ 21만대 만들어 조직적으로 검색어를 조작했다. 이들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검색어 등록 알고리즘을 연구, 마치 사람이 자판을 누르는 것처럼 검색어를 한 음소씩 입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만 명의 포털 이용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탈취 개인정보를 불법 거래한 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사건은 비정상적인 검색어 움직임을 파악한 네이버가 수사를 의뢰했다. 네이버는 자체 조사로 비정상 움직임을 인지 후 바로 수사기관에 신고했다고 한다. 조작에 사용된 계정을 보호하는 등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도 마쳤다.
너무 늦었다. 기술을 통해 ‘자정’을 확신하던 네이버의 수사 의뢰 시점은 이미 1년간 약 1억6000만회 검색어 조작이 이뤄진 이후다. 9만4000쌍의 키워드를 ‘연관검색어’로 등록했다. 4만5000여개의 ‘자동완성 검색어’도 만들었다. 이 기간 이들이 챙긴 수익은 최소 4억원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은 완벽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IT기업 네이버가 작은 조직의 ‘기술’에 놀아난 셈이다. 실검과 댓글은 너무나 쉽게 조작됐다. 일부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견이 마치 전체의 의견인 양 비치고 있다.
포털이 순수하게 대중의 의견이 모이는 ‘공론의 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늘 의문이 남는 이유다.
◇‘실검법’ 국회통과 초읽기...네이버, 피해자 코스프레
부당한 목적으로 매크로를 이용해 실검 조작을 막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실검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7일, 30일 두 차례에 걸쳐 법안심사소위원회인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2소위)를 열고 실검법에 일부 합의했다.
개정안은 조작한 이용자를 처벌하는 규정과 사업자에게도 조작을 방지하도록 의무를 지우고 있다. 이용자가 부당한 목적으로 매크로를 이용, 서비스를 조작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누구든지 이를 어길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사업자는 서비스가 이용자들로부터 조작되지 않도록 기술·관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인터넷 업계는 곧장 반발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는 3일 성명서를 내고 “문제의 본질은 소수의 이용자(집단) 범법행위와 어뷰징”이라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와 대다수 이용자는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결과책임을 묻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인터넷기업이 어뷰징 문제에 다각도로 대응하는 등 서비스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검법이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일각에선 이 법이 총선을 앞두고 ‘사전검열’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까지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기협 주장 역시 과도하다. 포털이 자정 노력을 하고 있기에, 실검 조작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인기협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후원으로 운영된다. 포털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인 셈이다. 협회장도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맡고 있다.
카카오는 실검은 실검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다. 네이버는 “실검폐지를 논의하고 있지 않다”가 공식 입장이다. 대신 다양한 기술을 통해 악영향을 완화하겠다는 설명이다.
인기협의 성명서는 이 때문에 사실상 실검법에 대한 네이버의 입장을 대변한 것에 불과하다. 실검을 유지하는 기조는 네이버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협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부정한 일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아니라 발생한 장소를 탓하는 경우가 생겼다”며 "자정의 물을 흘려 부작용을 씻어내고 있다"고도 했다. ‘관리의 부실’에 대한 책임은 전혀 없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 주장이다.
2017년 10월.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뉴스 배치 조작’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네이버스포츠 담당자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청탁을 받고 비판 기사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재배치했다고 시인했다.
한성숙 대표는 당시 사과문을 통해 “이러한 의혹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며 “다양한 AI 추천기술을 적용해 내부 편집자가 기사 배열을 하는 영역을 줄이는 방향으로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네이버가 인공지능(AI)으로 콘텐츠를 관리하는 데 속도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년 3개월이 지났다. 네이버는 그간 ‘나름의’ 자정 노력을 기울여왔다. 메인 화면에서 ‘뉴스 콘텐츠’가 노출되지 않도록 바꿨고, 모바일화면도 검색창 위주의 디자인으로 개편했다. 클린봇 등을 통해 악성 댓글을 잡으려는 시도도 보인다.
네이버의 이 같은 노력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뉴스 배치 조작’ 사건 이후 2년3개월간 우리 사회는 ‘포털 중심의 여론 조작’ 사건의 유무형적 피해를 입었다. 과연 “보완책 마련”에 약속이 올바르게 이뤄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네이버는 이 피해에서 자유로운가. 네이버는 정말 피해자인가. 누가 누굴 탓해야 옳은 것인가. 천천히 톺아볼 필요가 있다. 네이버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벗어야 2년 전 약속한 ‘보완책’을 보다 완벽하게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두용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