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합의 맹비난→역사적합의 약속→볼품 없는 결과' 반복"
부동산 재벌 출신으로, '협상의 달인'을 자처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력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전임 대통령들이 이뤄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자화자찬'하지만, 외교와 무역 분야에서 이렇다 할 가시적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트럼프는 자신이 '협상의 해결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실적 리스트는 대부분 미완의 상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협상의 기술' 사업수완을 외교 및 무역 정책에 접목하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이 취임한 지 거의 3년이 다 돼가는데도 자신의 이름을 건 실질적인 합의는 별로 해낸 것이 없다"며 내년도 대선을 앞두고 '대어'급 합의를 할 남은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미·중 간에 이뤄진 부분적 무역 합의만 하더라도 "매우 실질적인 1단계 합의에 도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평'에도 불구, 아직 막판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미완의 합의'라는 것이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탈레반과의 과감한 시도에서부터 터무니없는 그린란드 매입 추진에 이르기까지 대략 20여개의 국제 협상에 착수하거나 제안을 해둔 상태이지만 지금까지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타결식 타협)은 없었고 일부는 명백한 실패로 귀결됐으며 상당수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불완전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서는 시리아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협상 기술 부족이 확실히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쿠르드 동맹을 터키로부터 지키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할지, 그리고 언제 그리고 얼마나 많은 역내 병력을 본국으로 귀환시킬지에 대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 아프가니스탄처럼 역사적으로 골치 아픈 지역에 대한 해결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첫 번째 미국 대통령은 아니지만, 그가 자신을 '최고 협상가'로 자처하며 국제적으로 '즉흥적 노력'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보도했다.
마크 랜디 보스턴대 교수는 WP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적성국들이 자신이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부동산 거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WP는 트럼프의 가장 두드러진 '외교적 성과'인 북한과의 협상도 '일시 정지' 상태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곧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음에도 북한으로부터 미국과의 협상이 '역스럽다'는 반응만 돌아온 채 추가 협상 일정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유해 송환과 북한의 핵실험·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을 놓고 '중간 승리'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6자 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트럼프는 자신의 본능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고 협상 테이블에서의 자신의 기량을 과대평가한다고 비판했다.
힐 전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그는 자신이 대화상대의 친구가 되고 자신의 매력으로 그를 매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북한 인사들이 그 매력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매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 및 주권 보호를 위한 국제적 합의를 추구하고 있다', '수백만 제조업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 '전임 대통령들이 실패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이용하는 것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접시를 조금 깨도 두렵지 않다'는 말들을 쏟아내 왔지만, 지난 대선 기간 공약한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 재정비를 제대로 이뤄내지는 못했다고 WP는 보도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합의를 이룬 건 단지 한국과의 합의였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거론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새로운 합의가 아니라 미국 입장에선 기존 합의에 대한 '대단치 않은' 수정이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환상적 합의",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게 됐다"고 자랑했다고 전날 각료회의 발언을 지적했다.
또한 지난달 체결된 미일 간 부분적인 무역 합의도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일본 등 11개국과 체결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많이 진전된 내용이 아니라고 전했다.
'특유의 과장 화법을 통한 기존 합의 맹비난→역사적인 대안 약속→기존 합의 대비 더 대단치 않은 결과 도출' 사이클이 트럼프 대통령이 일관성있게 보여온 패턴이라는 것이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 TPP, 파리 기후변화 협약 등 자신이 걷어찬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국제 합의들을 대체할 새로운 합의를 맺는 성과도 얻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의철 전문기자 defence@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