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약속 이행 평가에 영업 압박까지
KT에 소속된 인터넷 설치기사들이 시간 당 여러 집을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KT 내부에서는 이를 ‘중복 할당’이라고 부른다.
8일 녹색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KT 자회사 ‘KT서비스’ 소속 설치기사들은 중복 할당으로 고통 받고 있다. 서울에서 일하는 설치기사들뿐만 아니라 지방의 기사들도 입을 모아 “중복 할당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한 시간에 네 건을 뛰라는 것이 KT의 요구다. KT서비스 소속 설치기사 A씨는 “다른 회사는 10시에 1건을 배정하면 더 이상 작업 건을 넣지 않는데, KT는 3~4건을 넣는 식”이라며 “지역에 기사는 하나인데, 현장 기사들이 밥도 못 먹고 뛰어다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소비자와의 약속 이행 정도를 책정하는 평가도 있어 회사에서 요구한 일정에 끌려 다녀야만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무리한 일정 배정에 대해 회사에 여러 차례 문제 제기를 했으나 현장 직원들끼리 조율하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 변하는 것은 없었다”며 “막막할 따름”이라고 심정을 전했다.
이사철에는 더욱 심하다. 또 다른 KT서비스 소속 설치기사 B씨는 “일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라며 "이사가 많은 ‘손 없는 날’과 같은 경우에는 이사가 끝나는 시간인 오후 4시에 4~5가구를 방문하는 일정이 잡히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지역을 관할하는 한 기사가 모두 방문해 서비스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지역을 맡고 있는 기사가 가서 대신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모든 동료 기사들이 다른 회사를 부러워하는 상황”이라며 “회사에서는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중복 할당을 피하게) 개발이 안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중복 할당 문제는 3사 중 KT가 가장 심하다. LG유플러스의 자회사 ‘유플러스홈서비스’ 소속 설치기사 C씨에게 KT의 중복 할당에 대해 말하자 “그런 경우는 없다”면서도 “설치 상황이 집집마다 달라 소요 시간에 차이가 있고, 이동시간에 쫓겨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고 어려움을 표했다.
SKT의 자회사 ‘홈앤서비스’에 소속된 설치기사 D씨는 KT의 중복 할당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현재는 홈앤서비스 소속이지만 과거 티브로드에 소속되어 있던 일부 설치기사들만이 아직 시스템 통합이 되지 않아, 중복 할당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들은 본사와 시스템 통합을 위해 활발하게 협의 중이다.
한편 본사로부터의 영업 압박은 3사 설치기사들이 겪는 공통적인 고충으로 드러났다. D씨는 “영업을 강요하는 행태가 최근에 더욱 심해졌다”며 “기사들은 기존에 우리 회사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집에 방문하는데 신규 영업 실적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KT서비스 소속 설치기사 E씨는 “내가 영업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나 매일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KT서비스는 해당 내용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KT서비스 관계자는 “KT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현장 작업자에 동시간대 중복 할당을 통한 무리한 작업 요구를 하지 않는다”며 “같은 시간대에 작업이 중복될 경우 작업자를 분산하거나 고객과의 작업시간을 조정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이선행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