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년 전 통신 시장의 서비스·요금 경쟁 활성화 유도하는 목적으로 제정된 단말기 유통법(단통법)을 전면 폐지하기로 시사하면서 통신 시장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 22일 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직후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어 단통법을 폐지하고, 선택약정 할인제도는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생활 규제 개혁 방안을 공개한 바 있다.
정부는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 단통법을 폐지하고 지원금 공시와 추가지원금 상한을 없애 시장경쟁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014년에 도입된 단통법은 소비자 사이의 보조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단말기 지원금 공시를 의무화하고, 공시 지원금의 15% 내에서만 추가 지원금을 제공하도록 했다. 여기에 통신사들이 의미없는 보조금 경쟁 대신 통신망과 통신 인프라 투자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골자인 법이었다.
그러나 단통법 시행 이후에 이동통신사들의 경쟁을 오히려 저해해 소비자들의 이익이 감소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여기에 ‘성지’인 일부 판매점에서 지원금 범위를 초과하는 불법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소비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 역시 커졌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의 단통법 폐지 효과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이통사들의 경쟁을 다시 점화해 통신시장의 경쟁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쪽과 이미 5G가 안착한 상태에서 크게 효과가 없을 거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김홍식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단통법 폐지된다고 해서 당장 통신사 마케팅 비용이 급증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5G가 도입된 지 5년이 경과해 이미 포화 국면에 돌입했고 9년 간에 걸친 학습 효과가 크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장기적으로 5G Advanced 도입 이후 고가 요금제가 다수 출시되고 우량 가입자 유치 경쟁이 다시 재현된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라면서, “타사 번호이동 가입자 대상으로만 특화된 보조금 살포가 가능해진다면 해볼만한 게임”이라고 전망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단통법 폐지는 통신사 마케팅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 복병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장기적으로 투자 심리 위축 요인이 될 것”이라고 봤다. 그 이유로는 “번호이동 가입자 증가에 따른 단말기 교제 가입자수가 증가하고 대형 유통상 부활로 인한 리베이트 상승 우려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통법 폐지는 오늘(25일) 시작하는 5G 28㎓(기가헤르츠) 주파수 대역 신규 기간통신사업자 경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스테이지엑스, 마이모바일, 세종텔레콤 제4이통사 후보 업체 3곳이 28㎓(기가헤르츠) 주파수 대역을 낙찰받기 위해 경매에 뛰어든 상태다. 단통법이 폐지된다면 제4통신사로 선정되는 업체와 SKT・KT・LGU+ 기존 이동통신3사와의 단말기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업인프라 구축 등 초기 사업 비용으로 조단위를 투자해야하는 제4통신사 입장에서는 단통법폐지가 여기에 더 부담을 가중시키는 셈이다. 3개 후보사는 각사의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28㎓ 사업에 앞서 5G 요금제 가입자를 모으는 3.5㎓ 사업을 먼저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이통3사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서 단통법 폐지가 제4통신사는 그리 반가울 수 없는 셈이다.
한편 정부는 단통법 폐지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등을 위해 국회의 논의를 거치고 소비자, 업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조아라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