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조직 통합·비핵심 기능 폐지 계획
2000명 희망퇴직 포함 자구책 발표
글로벌 경기침체와 공급망 불안이 장기화되며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국내 기업들은 위기 극복에 대한 강한 도전정신으로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간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창출해 성장해왔다. 이에 <녹색경제신문>은 위기 돌파를 향한 경영자 및 기업의 노력과 성과 등 주요 사례를 심층 취재해 '위기는 기회다' 연간 기획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註)]
한국전력이 사상 초유의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누적 부채가 20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한전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 인재개발원 부지와 자회사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등 자구책을 내놨지만 이를 놓고 적자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한전은 고강도 조직 개편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 현재 '8본부 36처'인 본사 조직을 '6본부 29처'로 축소하고 유사조직 통합·비핵심기능 폐지 등을 통해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한전채 발행 한계 도달...전기요금 정상화도 요원
한국전력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썼던 방법인 한전채가 발행 한계에 이르렀다.
이달 기준 한전채 연간 발행량은 11조9300억원이다. 정부가 올해 목표로 한 발행량이 최대 15조2400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4분기 발행 가능한 한전채는 3조3100억원 수준이다.
정부는 시장 부담을 고려해 발행량 억제 정책을 펴고 있다.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흡수하면 다른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전채 발행한도도 쪼그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르면 한전은 전년 실적을 기준으로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당기순손실액이 7조8000억원에 이르게 된다면 내년 한전채 발행한도는 65조5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전채 발행한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한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국회가 한전법 개정으로 한전채 발행한도를 확대한 것이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결국 4분기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최근 새로 선임된 한전 김동철 사장 역시 국회를 찾아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관측도 뒤를 따르고 있다.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박대출 의원 역시 지난3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올 하반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대해 "내년 총선 전 안된다"고 답했다. 최근 물가가 치솟으며 서민경제가 어려워진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희망퇴직' 카드 만지작...노조 반발 거세
한전이 희망퇴직을 검토하고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도 인력효율화를 시사했다. 다만 노조의 반발을 고려하면 위로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재원이 마땅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에 한전이 희망퇴직을 단행한다면 창사 이래 두 번째 구조조정이 된다. 한전은 지난 2009년~2010년 420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업계에서는 희망 퇴직자에게 지급할 퇴직금 마련을 위해 한전 간부직 약 5700명이 반납할 올해 임금 인상분 등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보고 있다.
한전이 희망퇴직을 고려하고 있는 이유는 재무 위기 때문이다. 한전의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총부채는 201조400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겼다. 이에 따른 이자비용은 하루 평균 70억원으로 추산된다.
김동철 한전 사장도 희망퇴직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 4일 취임 후 처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전이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조직규모, 인력효율화보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지난 12일 에너지 공기업 경영혁신 점검 회의에서 "국민이 납득할 추가 자구책을 마련하라"라며 "공기업 적자 해소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 비용을 국민에게 요금으로 모두 전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희망퇴직을 앞두고 노조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한전 노조 측은 위로금을 주지 않는 이상 지원자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더불어 희망퇴직 위로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재원 자체는 현재 총인건비가 아닌 재원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한전 직원들은 "정부 지시로 요금을 원가 이하로 받았는데 책임은 직원이 지라는건가" 등의 의견을 내고 있다.
3분기 '반짝 흑자'에도...적자 해소 역부족
한전이 10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에 누적 영업손실은 6조45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개선됐다. 다만 흑자지속이 불투명한 탓에 앞서 발표한 자구노력을 이행하는 데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전은 3분기 연결 기준 1조996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24조4700억원을 기록했으며 당기순이익은 8333억원으로 나타났다.
3분기까지 매출액은 65조6865억원으로 1년 전보다 26.9%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비용이 72조1399억원으로 2.0% 소폭 줄어들며 영업손실 규모는 6조4534억원으로 전년보다 70.4% 개선됐다.
지난 2분기까지 9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이어오던 한전이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당기순손실은 5조982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1% 개선됐다.
한전에 따르면 영업비용은 연료비 감소 등으로 1조4594억원 감소한 데 기인했다. 구체적으로 전기판매수익은 판매량이 0.3% 감소했지만 13조8281억원 증가했다. 요금 인상에 따라 판매단가가 29.8% 상승한 탓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자회사 연료비는 2조6599억원 감소했지만, 민간발전사 전력 구입비는 2674억원 증가했다. 발전량과 구입량의 전체 규모가 감소했지만 민간 신규 석탄 발전기 진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향후 자구노력을 철저하고 속도감 있게 이행할 계획이다.
앞서 한전은 서울 공릉동 인재개발원 매각과 2000명 규모의 희망퇴직 등을 포함한 자구책을 발표했다.
더불어 2001년 발전사를 분사한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개편을 단행할 예정이다. 한전의 상징적 자산인 서울 공등롱 인재개발원 부지와 자회사 한전KDN의 지분 20%, 필리핀 칼라타간 지분 전량을 매각해 총 1조원을 창출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어, 한전은 지난 9일부터 주택용·소상공인 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 중에서도 대용량 요금만 평균 ㎾h(킬로와트시) 당 10.6원 인상하는 내용의 요금조정안을 발표했다.
박금재 기자 re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