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이 1박2일간 한국 방문을 마치고 4일 오후 다음 방문국인 일본으로 떠났다. 3일 저녁 늦게 들어와 24시간 가량 머문 뒤 떠난 셈이다. 그러나 이번 방문을 놓고 의전 문제 등 뒷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를 홀대했다는 것. 펠로시 자신도 그렇게 느꼈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일부 외신은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를 냉대했다”고까지 했다.
윤 대통령은 펠로시를 직접 만나지 않았다. 휴가 중이어서 그랬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대신 펠로시와 40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 최소한의 성의만 보여주었다고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한미관계 등을 감안하면 만나는 게 옳았다. 시간은 만들면 된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이 지방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집무실이든, 제3의 장소든 잠깐이라도 시간을 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펠로시는 누군가. 그냥 정치인이 아니다. 미국 의전 서열 3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18선(選) 의원으로 워싱턴에서 가장 존재감이 크다고 평가받는 전설적 여성 정치인이다. 우리보다 앞서 방문한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서는 정상들과 만났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는 5일 조찬을 가질 예정이다. 한국만 정상이 안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펠로시의 방한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만난다, 안 만난다를 번복했다. 휴가 중이라는 이유를 댔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펠로시의 방한 이틑날인 4일 아침 방송에 나와 “윤 대통령과 펠로시가 만난다는 데 정치 9단을 건다”고 했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상식이었다. 펠로시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인사들도 면담을 했는데 미 의회 최고 실력자를 만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박 전 원장은 이날 밤 페이스북을 통해 “약속대로 정치9단증을 반납한다“면서 ”저는 간절히 윤석열 대통령과 펠로시 美 하원의장의 면담을 바랐고 촉구했다. 펠로시는 금년 말을 기해 의장직을 끝내며 11월 중간선거 불출마로 정계은퇴가 예상된다. 美 의회 외교의 중요성, 펠로시 의장의 영향력, 특히 이번 아시아 순방국의 모든 국가원수와 면담하는 바 우리 대통령과만 휴가로 인해 면담하지 않는다면 한미동맹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미 양국간에 벽오동 심은 뜻이 무엇일까요.“라고 했다.
펠로시가 오산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도 우리 측에서 1명도 안 나가 의전 실수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서로 책임을 미루는 분위기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보면 3일 저녁 오산 미 공군 기지에 도착한 펠로시 의장을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등 미국 측 인사들만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국회 측은 “공항에 의전을 나가지 않기로 미측과 사전 협의를 거친 것”이라 했고, 외교부 안은주 부대변인은 “의전 지침상 의회 인사 방한에 대해서는 통상 우리 행정부 인사가 영접을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중국을 의식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오풍연 논설위원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