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ESG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제 ESG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ESG는 환경적 건전성(Environment)과 사회적 책임(Social),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를 바탕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는 경영 전략이다. ESG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이에 <녹색경제신문>은 ESG를 이끄는 사람들, 조직 등을 연중 기획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註)>
HMM(대표이사 김경배)은 코로나19 팬데믹 2년 동안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 백조가 하늘 높이 날아 오르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그 일은 이제 김경배 신임 HMM대표이사에게 맡겨졌다.
김경배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국제경제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공급망 위기'를 해결하고, 탄소중립을 위해 탈탄소 로드맵을 만들고 실현하는 기초를 닦아야 한다. 또한 최대주주인 정부기관(KDB산업은행, 한국해양진흥공사)의 '관리'에서 벗어나 민영화를 이뤄내야 한다.
전임자인 배재훈 전 HMM대표이사가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이뤘다면, 김 대표는 본인이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투명한 경영을 통해 세계 톱클래스의 선사로 위상을 갖춰나가야 한다.
▲탈탄소 해운으로 탄소중립 준비해야...메탄올·암모니아연료 추진 선박 필요
국제 해운업계는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3%를 차지할 만큼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연간 10억톤 규모로 추정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선박 운송업무당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8년 대비 2030년까지 40%, 2050년까지는 70%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선박에서 배출되는 연간 온실가스 총량을 2008년 대비 2050년까지 최소 50% 저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IMO는 2013년부터 신규건조 선박에만 적용하던 에너지효율설계지수(EEDI)를 기존 운항하는 선박에 확대해 적용하는 현존선 에너지효율지수(EEXI)와 선박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탄소집약도지수(Carbon Intensity Indicator, CII) 등 강력한 규제를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EEXI는 선박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정을 만족하지 못하는 선박은 엔진 출력을 제한해 최대 속도를 강제로 낮추는 등의 규제를 시행한다.
각 선박은 배출량 검사 결과에 따라 A등급부터 E등급까지 5단계 등급을 부여받아 하위의 D등급을 3년 연속 받거나 최하위의 E등급을 한 번이라도 받으면 시정조치 계획을 수립해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외항 운송 사업에 등록된 선박 약 880척 중 85%가 현존선 에너지효율지수(EEXI) 규정을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또 2020년 운항자료를 바탕으로 680척의 탄소집약도지수(CII)를 계산해 본 결과, 약 34%가 D∼E 등급인 것으로 조사 됐다.
HMM은 지난해말 기준 국제해운사 중 가장 높은 스크러버(탈황설비) 설치율과 액화천연가스(LNG)연료겸용 선박 보유 비율이 가장 높다.
하지만, 스크러버나 LNG추진선박은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친환경 선박은 아니다.
덴마크 해운사인 머스크는 지난해 현대중공업그룹에 12척의 컨테이너선박을 발주했다. 또한 이를 위해 2025년말까지 덴마크 에너지기업인 외르스테드를 비롯해 6개 회사와 연간 최소 73만톤의 메탄올을 생산, 구입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고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 실천에 들어갔다고 최근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또한 지난 7일(현지시간)에는 스틸제로(2050년까지 탄소중립 철강만 사용하겠다는 국제 이니셔티브 모임)에 가입해 2040년까지 넷제로(탄소배출이 없는) 철강을 100% 사용하겠다고 공표했다.
선복량 기준 세계 5위의 컨테이너선사인 독일의 하파크로이트는 최근 2030년까지 선단 배출량을 30%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2045년까지 기후 중립을 달성하겠다며 GCMD(Global Center for Maritime Decarbonization, 국제 해운 탈탄소센터)에 약 120억원을 투입했다.
전체 컨테이너 선복량의 약 85%를 차지하는 상위 11개 해운사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강화되는 IMO의 환경규제에 대비하면서 탄소중립을 향한 로드맵을 시작했다.
반면, HMM은 아직 뚜렷한 탄소중립 로드맵조차 없어 김 대표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다만 메탄올이나 암모니아연료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 제조에 관한 한 국내 조선사들이 최고라는 점과 HMM이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김 대표, '공급망 위기' 해결해야하는 사회적 책임 잊지 말아야
지난해 국제해운사들은 약 1500억 달러(약 180조원) 규모의 엄청난 영업이익을 실현했다. 특히 상위 10여개 업체로 구성된 3대 해운동맹(2M, 오션얼라이언스, 디얼라이언스)은 전체 화물량의 약 85%, 전체 이익의 90%를 휩쓸만큼 과점적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제해운사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공급망 강화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MSC는 선복량을 확충해 수평적 확장을 꾀하면서 선복량 세계 1위를 달성했고, 머스크 등은 육상물류와 연계하는 통합 물류망 구축과 친환경 연료 생산까지 투자하면서 수직적 통합으로 해운사가 아닌 종합 물류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HMM은 이같은 국제해운사들의 분주한 미래경쟁력 투자와는 아직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무역의존도와 수출기여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공급망의 양적, 질적 경쟁력 강화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국가 안보차원에서도 섬나라와 같은 지정학적 특징을 감안할 때 공급망 경쟁력은 필수적인 생존 요소다.
국제해운 컨설팅업체 알파라이너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선복량 8위인 HMM의 선복량(82만TEU)과 점유율(3.2%)은 7위 업체인 대만의 에버그린라인(150만 TEU, 5.9%)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대만에는 9위 양밍해운(67만TEU, 2.6%)과 11위 완하이라인(41만TEU, 1.6%)도 있다.
제조 강국인 프랑스는 3위 CMA CGM이 있고, 중국은 4위 코스코, 독일은 5위 하파크로이트, 일본은 6위 ONE와 다수의 중견 해운사들이 있다.
국내 제조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공급망 인프라 경쟁력에서 열위에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취임사에서 "해상운송은 한 국가의 기간산업으로써 그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다. HMM은 한국 경제의 수출입에 기여하는 공익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천만 남았다.
▲김 대표 "주주가치 훼손하지 않게 엄정하고 투명한 경영 해나갈 것"...실천이 중요
김대표는 지난달 취임사에서 "회사의 중단기 계획은 물론이고 장기 마스터 플랜을 수립, 추진함에 있어서 주주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게 엄정하고 투명한 경영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HMM은 국책은행의 지위를 내세워 독선적인 행보를 이어 온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해피아(해수부+마피아)를 대표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사장 김양수)가 최대 주주로 있다. 또한 해진공은 올해부터 단독 관리를 맡고 있다.
지난해 9월 이동걸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HMM은 코로나19 특수로 많은 돈을 벌었고 내후년 이익이 별로 없을 것...10년간 적자를 냈던 기업이고 누적 적자가 4조6000억원에 달하는 취약기업"이라면서 "내후년(2023년)에는 다시 적자로 돌아설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HMM이 정상화됐다고 보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한 바 있다.
금융정보회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HMM의 예상영업이익은 9조원을 웃돌아 지난해 올린 7조3775억원에 이어 3년 연속 사상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내후년에 HMM이 적자로 돌아설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이 회장의 얘기는 내년부터 강화되는 IMO의 환경규제를 감안하면 거의 꿈같은 얘기다.
해진공은 지난 2018년 해운재건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HMM의 지원을 위해 설립됐다. 실제로 해진공 업무의 70%를 HMM이 차지한다는 것이 해운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해상운임이 급등하면서 HMM의 경영정상화가 당초 해진공의 계획보다 빨리 이뤄지면서 엉뚱하게도 지분을 늘리며 최대주주가 됐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HMM지분을 확대해 공기업을 만들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더구나 영구전환사채(CB) 6000억원의 만기가 한참 남아 있었는데도, 금융위원회에서 10월에 CB전환에 대한 법령 개정 고시 발표 바로 전날 CB전환을 공식화했다. 금융위원회의 개정된 법령에 따르면, 해진공이나 산은의 CB전환은 '불건전한 금융행위'로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해치는 행위다.
실제로 산은과 해진공의 CB전환으로 HMM주가는 곤두박질 쳤고 9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12조6906억원이다. 이는 3대 해운동맹가입 기업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선복량 11위인 대만 완하이라인의 선복량은 HMM의 절반에 불과한데도 이날 종가 기준 시총은 약 16조원으로 3조3000억원 더 많다.
HMM의 실적이 호조인 만큼 산은과 해진공은 CB전환을 통해 이미 조(兆) 단위의 주가 차익을 챙긴 데 이어 이달말께 지급되는 배당금도 각각 600억원씩 받는다. 또한, 남아있는 영구채를 통해 해마다 3%의 이자수익을 올리고 있고 남아있는 영구채에 대한 주식전환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금융위가 이같은 CB전환을 '불건전한 금융행위'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인 산은과 해진공이 재무적 성과 달성을 위해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대표가 이들의 공권력과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극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직원, 소액주주, 고객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경영목표와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강력한 지지를 획득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