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업계 "공정위 과징금 부과되면 줄도산 불보듯...장기 국제 경쟁력도 잃게 될 것"
- 정부가 가진 공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것...국민에 칼 끝 겨누면 안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조성욱)의 동남아노선 해운사 담합 과징금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법과 규정만을 앞세워 유사한 사례도 없이 수십년 동안 이뤄져 온 관행에 대해 충분한 사전 고지나 경고, 주의 없이 최대 2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게 되면 전세계적인 해운호황을 타고 가까스로 회생하고 있는 중소해운업체들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도 청와대는 조선·해운 부활의 공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며 자랑하기 바쁘다. 그런데, 최근 HMM의 파업위기 대 처럼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청와대의 모습과 역할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청와대 "文 대통령 정책 결단이 조선·해운 되살렸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의 정책 결단이 조선과 해운을 부활시켰다고 주장했다.
12일 박수현 수석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한민국 조선업, 'K-조선'으로 부활한 동력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9일, ‘K-조선 상생 협력 선포식‘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는 정부의 결단과 역할을 강조하는 자부심이 이례적으로 가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 정부는 조선과 해운을 따로 보지 않고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을 연계시켜 함께 회복하고 함께 성장하는 전략을 세웠다. 한진해운의 파산을 극복하기 위해 2018년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여 국적선을 건조하기 위한 대대적인 정책금융지원을 시작했다.
최대 국적선사 HMM은 우리 조선사들에게 초대형 컨테이너선 서른두 척을 발주하여 스스로 국적선을 확보하면서 조선사들에게 일감과 일자리를 제공했다. 과잉 공급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같은 정책적 결단이 해운업과 조선업을 동시에 살리는 윈윈전략이 되었다고 자부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치적 자랑에는 탁월하면서도, 지난번 HMM 파업위기 때처럼 문제가 드러나면 어디 갔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공정위 담합건도 얘기가 불거져나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에도 문제해결 과정에서는 방관자 역할을 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공정위, 최대 2조원 과징금 부과...해운업계, 국제 경쟁력 훼손은 물론 최악의 경우 줄도산까지
공정위는 총 23개(국내 12개, 해외 11개) 해운업체의 동남아노선 운임담합에 대한 과징금 부과 여부가 이달말 결정될 전망이다. 금액은 8000억원 규모다. 여기에 한중, 한일 노선까지 운임 담합을 조사를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같은 이유로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최대 2조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가 실현되면, 오랜 침체 끝에 활기를 띠고 있는 국내 중소해운업계의 줄도산은 물론, 선박과 인력 확보에서 뒤쳐지면 장기간 국제경쟁에서 낙오될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해운·조선업계는 운임답합은 해운업 고유의 관습이라는 주장이고,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해운법 29조에는 ‘선주가 공동행위를 할 경우 화주와 서로 정보를 충분히 교환해야 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위법행위가 아니다. 다만, 공정거래법과는 서로 상충되는 것은 사실이다.
국제적으로도 해운업계의 운임 공동행위는 담합 규제의 예외로 인정되어왔다. 유엔은 지난 1974년 ‘유엔 정기선 헌장’을 통해 이를 인정해오고 있다. 담합 없이 해상운임 경쟁이 과열되면 거대 선사만 살아 남아 해상운임이 이전보다 더 폭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도 예외는 있다. 공정거래법 제58조는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 예외를 인정해 준다.
다만, 공정위는 해운법에 따른 해운업 담합은 예외로 인정하되, 공동행위의 조건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말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공정위는 해운업계에 관련법과 관련해 과징금은 커녕 ‘경고’ 또는 ‘시정명령’조차 없었다. 해운업계는 늘 해온대로 했을 뿐인데,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다. 이는 신뢰를 파기하는 행위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법을 적용하면 국민과 기업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은 예측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법률을 공포하고, 계도기간을 주고, 경고나 시정명령 등 충분히 법을 지킬 수 있도록 알린 후에 법을 적용한다.
이는 정부와 국민의 신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이 법을 지킬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줘야 한다. 정부가 가진 공권력은 원래 국민의 것이고, 정부는 위임권자에 불과하고 국민을 처벌하는 것이 법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법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하고, 상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면 안된다.
▲권력기관은 국민에게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돼
노자의 도덕경에 '어불가 탈어연(魚不可脫於淵) 국지리기불가이시인(國之利器不可以示人)' 이라는 구절이 있다. 물고기가 연못 밖으로 나오면 안되듯이 국가의 이기(권력)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면 안된다는 말이다.
공정위의 이번 과징금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쉽게 알기 어렵다. 반면에 이로 인한 혼란과 피해는 그야말로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계는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과징금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8일까지 서울·부산·인천에서는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 위원장, 이권희 한국해기사협회 회장,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등 해운단체 관계자들의 1인 피켓 시위가 이어졌다.
청와대는 조선·해운 재건을 자랑하고 있고, 공정위는 조선·해운업의 줄도산보다 공정거래법 조항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국내 대형 로펌에서 모셔가는 권력기관 중 하나가 공정위다. 모처럼 수출이 두자릿수로 크게 늘고 있다. 수출물량의 99%이상이 해상물류에 의존한다.
공공기관이 법을 지키고 규정을 따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 그친다면 굳이 사람이 그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를 염려도 없고, 로펌에 가서 전관예우를 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국익과 국민의 안위를 먼저 살피는 공직자와 권력기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이번 사태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