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재도약엔 ‘투자‧타이밍‧인재’ 3박자가 좌우"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강국들의 반도체 산업 육성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3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이 흔들린다 :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과 미래’ 세미나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반도체 산업 동향과 주요 사례, 시장 확대 방안 등이 논의된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패널들도 한결같이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위기감을 갖고 재도약을 위해 절치부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권 부회장은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은 우리나라 국가예산 558조원에 버금가는 약 530조원 규모로 전망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도체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어 우리 기업들에게 분명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반도체 주도권을 잡기위한 글로벌 강국들의 움직임을 보면 결코 장밋빛 미래로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중국은 이미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가 중국 견제차원을 넘어 ‘Made in All of America(모두 것은 미국에서 만든다)'를 천명하고 지난 2월24일 행정명령을 통해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품목 공급망을 총체적으로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유럽도 전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 올린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상황이다.
권 부회장은 또 “대만 대표기업인 TSMC는 정부와 국민들의 든든한 지원을 기반으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리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투자(Investment), 타이밍(Timing), 인재(Talent)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사장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기조발표를 통해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님께서 작고하시기 직전,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한 반도체로 세계를 제패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되새겨본다”며 “반도체 기술 인재를 양성하고, 선도하는 기업들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정책 환경이 조성돼야 반도체 패권 장악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중국이 2015년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수 백조 원을 투자해 한국 반도체를 추격하고 있으나 미국의 강력한 제재와 낮은 기술 자급률의 한계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산업 동향과 발전 방향’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최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 재원을 집중하고 있는 파운드리 부문의 경쟁 심화와 재해로 새로운 위험이 부상했다”며, “주요국 정부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이 무역 제재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데 단기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중장기적으로 팹리스(반도체 설계)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유도 및 제조 경쟁력 강화를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또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4년까지 투자비의 40% 수준을 세액공제하고, 반도체 인프라 및 R&D에 228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중국은 2015년에 ‘중국 제조 2025’를 천명하고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 목표를 설정해 투자를 지속해 왔다”며 “하지만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7%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과거 LCD 굴기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름)’ 전략으로 대형 M&A 추진 및 반도체 국산화 확대를 시도 중이라고 소개했다.
유럽 국가들도 아시아 파운드리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이 뜻을 모아 최대 500억 유로를 투자하기로 합의한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중 반도체 기업 투자금액의 20~40%를 보조금 형태로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 센터장은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는 각국 정부의 요청으로 TSMC 등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들이 생산라인 재조정을 통해 자동차 반도체를 증산함에 따라 올해 7월 이후로는 공급 부족이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종합토론에서 반도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보유했지만 비메모리 부문의 경쟁력은 취약하며, 메모리반도체의 성공에 따른 안이함을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최근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주요국은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에 각종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수립해 유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미국, 유럽, 일본은 자국 내 제조시설 확충으로 공급망 안정화를 추진하고, 중국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도체 굴기를 노리고 있으며, 대만은 세계 최고의 시스템반도체 제조기술을 통해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더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우리나라도 반도체 제조시설을 신속하게 잘 구축하고 시스템반도체가 전자산업 공급망에서 역할이 확대되도록 민관이 협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미국은 1987년에 반도체 제조기술 연구조합 ‘세마테크(Sematech)’를 출범시켜 정부와 인텔 등 대기업이 투자한 덕분에 오늘날의 퀄컴이 탄생할 수 있었고, 대만도 1973년 설립한 ‘산업기술연구원(ITRI)’을 통한 지원 덕분에 TSMC, UMC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은 기업 간 경쟁구도를 넘어 국가 간 경쟁에 직면한 만큼, 정부와 기업은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영식 기자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