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과 안락 추구 욕구는 요즘 소비자가 갈망하는 내적 욕구의 외적 표현
패션은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위기를 겪는 업계다. 지난 5년 동안 년간 8% 성장율을 거듭하며 오는 2022년까지 연 매출액 1경 2조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시장규모로 클 것이라 예상돼던 글로벌 의류 및 어패럴 업계는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며 3~4월 매출감소율 15%를 기록했다(자료: Wall Street Journal). 코로나 폐쇄령 이후 소비자들은 가정 내 실내활동 시간을 주로 하다보니 외출용 새 옷이나 과시용 명품을 구매할 필요가 줄었고, 이를 반영해 대형 의류 리테일 브랜드들의 주가도 프리코로나 시기 보다 2~3포인트 하락했다.
원활한 경제 전망과 인간의 허영심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패션산업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얽히고설킨 글로벌 경제 공급망과 노동력의 차질, 소비심리 위축, 소매업계 초토화를 차례로 겪으며 실존적 위기에 처했다. 최근 패션 뉴스 사이트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이 출간한 『코로나19 분석 보고서』는 향후 패션업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생산라인을 한시 멈추고 ‘동면(hibernation)’에 들어가야 한다고 진단했을 만큼 의류 소비시장의 침체 추세는 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참고 자료: BoF “The State of Fashion 2020”).
그런 가운데 유독 스웨트팬츠(sweatpants)와 트랙팬츠(trackpants)는 전세계적으로 급격한 매출 향상을 기록중이라고 <WWD>가 최근 3월 23일 자 기사에서 보도했다. 출근을 위해 격식을 차려 입을 필요도, 패션과 유행을 사회적 과시수단으로 활용할 기회도 사라졌다. 전염병 확산으로 인해 건강과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낀 이 시점의 현대인들이 패션에서 갈구하는 궁극의 가치와 위안은 편안함(comfort)과 안전(safety)이다.
트레이닝팬츠, 조거, 원단에 따라서 스웨트팬츠로 또는 스트레치팬츠로도 불리는 트랙팬츠는 어휘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본래 운동선수들이 연습할 때 입는 훈련복과 웜업슈트(warm-up suit)에서 기원됐다. 품이 넉넉하고 신축성이 있어 입으면 활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 입고 뒹굴수 있는 편한 실내용 라운지웨어(lounge wear)로서 그동안 어패럴계에서는 내의 카테고리로 분류돼왔다.
그런 실내복이 당당한 외출복으로 변신하기까지 반 세기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목적과 장소에 따라 옷입기 규칙이 한결 엄격했던 1960~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트랙슈트 차림은 운동장과 체육관 안에서만 허용됐었다. 1970년말~1980년대 서구사회 도시 속 거리의 부랑아나 청소년들이 즐겨입는 청년하위문화의 반항의 심볼로 잠시 등장했다가, 1980~90년대에 브레이크댄서와 힙합가수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유행시키며 후디, 스웨트셔츠, 스니커즈와 함께 주류 패션으로 본격 진입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패션계의 기능성 테크 섬유 유행에 힘입어서 트랙팬츠는 더 강하고 더 장기적인 주류 트렌드가 되어 돌아왔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미 애슬레저, 스니커, 유틸리티 패션은 어패럴 분야의 놀라운 성장을 거듭중인 최근 가장 주목받는 패션 카테고리다. 1990년대 힙합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밀레니얼과 Z세대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꾸안꾸’ 룩과 애슬레저로 대변되는 기능주의와 웰빙 추구 욕구의 기호학적 발현이랄만 하다.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실제 인물이자 패션잡지계의 대모 아나 윈투어 〈보그(Vogue)〉 지 편집장이 최근 트랙팬츠를 입고 찍은 인스타그램 사진이 공개되자 패션계가 들썩댔다. ‘내 인생에서 트랙슈트는 절대로 입을 일 없다’고 단언했던 그녀가 트랙팬츠를 패션 아이템으로 공식 인정한 분수령적 순간임과 동시에 코로나19라는 인류역사상 예외적인 시절을 틈타 트랙팬츠가 드디어 홈 라운지웨어에서 업무복장으로 승격된 역사적 순간으로 패션업계는 해석한다.
트랙팬츠가 이렇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선언에 대한 기호로 정착돼가는 사이, ‘WFH(재택근무, Work from Home) 문화’가 낳고 있는 직장인 복장 규정의 나태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애덤 초언(Adam Tschorn) <LA타임스> 패션 섹션 부편집인은 ‘재택근무 스웨트팬츠는 이제 그만! 봉급받고 일하는 어른답게 옷 입어라.’(5월 17일 자)는 기사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차려입기는 자기관리, 일, 직장에 대한 존중이라며 재택근무 때도 외출용 복장을 하는 것의 의례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같은 그의 글에 대해 대다수 독자들은 냉담과 격렬한 반대를 오가며 반발했다. 이를 보더라도 스웨트팬츠와 트랙슈트에 대한 대중 사이 인기는 한동안 더 지속될 모양이다.
미국의 경우, 이미 총 경제인구의 약 40%는 반드시 직장 사무실에 가지 않고도 업무를 완수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스웨덴 등 그보다 더 탈제조업화된 북부 유럽국들의 경우 그같은 비율은 더 높을 것이다. 최근 영국의 재택근무자들 사이에서는 정기적인 영상 회의에서 보스와 동료들에게 스마트해 보이도록 트랙팬츠나 카고바지 같은 편안한 하의에 정장 상의를 혼합해 입는 새로운 절충적 코디가 유행하고 있다. 몸은 집에서 쉬고 있지만 정신과 마음은 늘 일과 대인상대에 신경써야 하는 이중적 상황이 최근 재택근무하는 사무직 노동자들 사이서 떠오른 새로운 스트레스로 떠오르고 있다(이에 대한 칼럼은 추후에 게재).
디자인 전략가 마리오 갈리아르디(Mario Gagliardi)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따라 과거 같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진 새 코로나19 국면을 맞아 건축, 인테리어, 패션을 포함한 디자인 업계도 새롭게 적응할 때라고 말한다. 이제까지 설렙과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가 주도하던 외적 이미지 위주의 자기과시를 버리고 내적 이미지(internal image) 지향의 소비자 심리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이 비즈니스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소비' 행위는 우리 인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핵심 활동이다. 그리고 서서히 정착되가는 코로나 이후 뉴노멀이 될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두기, 고용불안이 동반된 미래에도 대중은 저마다의 규모와 용도에 맞는 소비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