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량 상위 100개 중 22개~50개는탄소세가 영업이익 초과
-저탄소산업 전환 기술개발 지원·인센티브 확대 정책 바람직
주요 국가가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Net-Zero)’ 선언을 하면서 국내에서도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탄소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온실가스 배출량에 탄소세를 걷어 국민에게 균등하게 분배하자는 탄소세(carbon tax) 관련 법안을 지난 12일 대표발의해 탄소 다배출업종인 철강·정유·석유화학 업계엔 긴장감마저 감돈다.
탄소세 도입 시기와 세율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중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에 탄소세가 도입될 경우 온실가스 에너지 목표관리 업체로 등록된 908개 기업이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추가 부담해야할 비용은 탄소세 요율에 따라 연간 적게는 7조3000억원, 많게는 36조3000억원에 달한다는 예측이 나왔다.
특히 한전을 비롯한 발전사가 부담해야하는 탄소세만도 7조원을 훌쩍 상회해 원가 상승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탄소세가 일괄 부과된다는 가정 하에 배출처의 추가 부담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시나리오에 적용된 탄소세율은 t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당 10달러, 30달러, 50달러 등 세 가지로 가정했다.
이같은 설정은 주요 국제단체 및 전문기관에서 제시되고 있는 적정 탄소가격(40∼100 달러/tCO2eq)과 2019년 한국 배출권거래소 평균 가격(33달러/tCO2eq) 등을 고려했다.
분석 대상은 ‘2019년 온실가스 에너지 목표관리 명세서’상 등록된 1,042개 배출처 가운데 교육·의료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을 제외한 908곳이다.
분석 결과 배출처들은 시나리오별로 이산화탄소 환산톤 당 10달러의 경우 7조3000억원, 30달러의 경우 21조8000억원, 50달러의 경우 36조3000억원의 탄소세를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각각 2019년 전체 법인세수(72조1000억원) 대비 10.1%, 30.2%, 50.3%에 달하는 규모이다.
배출량 상위 100대 배출처는 전체 탄소세의 89.6%를 부담하며 영업이익 대비 탄소세 비중은 시나리오별로 10.8%, 32.3%, 53.8%로 나타났다.
이들 100대 배출처 가운데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영업이익 상위 10개 배출처를 제외하면 이 비중은 시나리오별로 39.0%, 117.0%, 195.0%까지 상승해 영업이익이 낮은 기업일수록 탄소세로 인한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탄소세액이 영업이익을 초과하는 배출처 수도 시나리오별로 각각 22개, 41개, 50개에 이르렀다.
발전에너지 분야 부담 가장 높아…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 우려
업종별 부담 순위는 중위 시나리오(30달러/tCO2eq) 기준으로 ▶발전에너지 8조8000억원▶철강 4조1000억원 ▶석유화학 2조1000억원 ▶시멘트 1조4000억원 ▶정유 1조200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5개 발전자회사 등 7개 발전에너지 공기업 및 자회사가 부담해야하는 탄소세만 7조3000억원에 달해 원가 상승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지적됐다.
철강 업종에서도 배출량 1, 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탄소세액 합계는 3조7000억원인 반면, 양사 영업이익 합계는 4조2000억원으로 영업이익 대비 탄소세액의 비중이 88.9%에 이른다.
1년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 대부분을 탄소세로 내야 하는 것이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탄소중립은 우리 경제와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주요국에 비해 높아 산업부문의 저탄소화 전환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과도한 탄소세 도입으로 산업계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될 경우 오히려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 물가 상승 등 경제 전체에 악영향이 발생할 수 있어 탄소세 도입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또 “미국은 향후 10년간 청정에너지, 친환경 수송, 친환경 산업공정 및 재료 연구에 4000억 달러(약 451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미국처럼 저탄소화 기술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저탄소화 관련 기술개발 연구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신성장동력 기술 대상 포함을 통한 R&D 세제지원, 재교육을 통한 기존 일자리 전환 등 투자와 지원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세계 추세를 보면 2020년 기준 탄소세를 도입한 나라는 24개국이다,
하지만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브라질, 이란, 인도네시아, 독일, 캐나다 등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0개국 가운데 탄소세 도입 국가는 일본과 캐나다 2개국뿐이다.
배출량 순위 5위인 일본은 ‘지구온난화대책세’를 통해 석유석탄세에 추가로 3달러/tCO2eq를 부과하며, 배출량 순위 10위인 캐나다는 지방정부 별로 탄소세(14~28달러/tCO2eq)를 도입했다.
탄소세 도입 국가 중 탄소세율이 높은 국가는 비교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스웨덴(119달러/tCO2eq), 스위스(99달러/tCO2eq), 핀란드(58~68달러/tCO2eq) 등이다.
주요 국제기구는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 달성을 위한 적정 탄소가격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IMF는 현재 글로벌 평균 탄소가격이 2달러tCO2e에 불과하지만 기후변화 목표 달성을 위한 적정 탄소가격을 2030년 기준 75달러/tCO2eq 로 제시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파리기후변화 협약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2020년 최소 40~80달러/tCO2eq, 2030년 50~100달러/tCO2eq를 적정 탄소가격으로 제시하고 있다.
윤영식 기자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