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의 유럽이야기] 맥주와 정치 — 재미와 진지함 사이 정치에 참여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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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의 유럽이야기] 맥주와 정치 — 재미와 진지함 사이 정치에 참여하는 법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 승인 2024.04.10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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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음료 맥주 내세운 오스트리아에서 정치 선풍
- 기성 사민당・녹색당 지지자가 지지층 구축

[오스트리아=박진아 유럽주재 기자]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신선한 정치 돌풍이 불어 기성 정계의 조심스러운 관망과 경계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근인 3월 24일, 자칭 ‚맥주당(Die Bierpartei)‘이라는 당명의 독립적 정당을 이끄는 도미닉 블라즈니(Dominik Wlasny) 대표가 오는 2024년 6월 실시될 오스트리아 연방 대선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했다.

‚만인에게 맥주를!‘ 오스트리아인들의 국민 음료인 ‚맥주’를 정치적, 사회문화적 접착매개체로 활용하는 ‚맥주당’은 의사 출신 록 스타 도미닉 블라즈니가 창립했다. Credit © Die Bierpartei
‚만인에게 맥주를!‘ 오스트리아인들의 국민 음료인 ‚맥주’를 정치적, 사회문화적 접착매개체로 활용하는 ‚맥주당’은 의사 출신 록 스타인 도미닉 블라즈니가 창당했다. Credit © Die Bierpartei

맥주당 창당자 겸 수장인 도미닉 블라즈니는 올해 만 37세의 젊은이로, 현재 본업은 ‚마로코 포고(Marco Pogo)'라는 무대 이름으로 활동하는 록 뮤지션이다.

그는 올 초부터 자신이 지휘하는 록 그룹 ‚투르보비어(Turbobier)‘를 이끌고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독일과 동유럽 등지에서 해외 콘서트 투어를 하며 그의 잠재적 팬층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가운데 자신의 철학과 대외 이미지 구축에 바쁘다.

오스트리아 정계에서 도미닉 블라즈니(예술가명: 마르코 포고)의 올 연방 국회 대선에 출마 선언은 그다지 놀라운 뉴스는 아니다.

앞서 그는 제작년인 2022년 10월 9일 실시된 오스트리아 연방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해 비엔나(도시 겸 자체 주)에서 총 후보자 7명 중 기성 정당 및 독립 후보들을 제치고 득표 실적 3위를 거두며 예상 밖의 선전을 거두는 정치 선풍을 일으켰다.

청춘 세대인 만큼 도미닉 블라즈니의 이력서는 짧지만 이채롭다.

그는 본래 의과대학에서 의삭을 전공한 내과의사 출신이지만 박사 취득과 레지던트 과정 수료 후 의사의 길을 [잠시] 접기로 하고 그 대신 의대 시절부터 해오던 취미를 살려 펑크록 밴드 터보비어의 보컬 리더(마르코 포고)와 코메디 카바레 퍼포머로서 활동해오다 10년 전인 2014년, 자신의 투르보비어 밴드 데뷔 앨범과 동시에 맥주당을 설립했다.

그 후로 그의 거주구역인 비엔나 시 지머링(Simmering) 구(區)에서 구의회 의원으로도 활동하며, 지역구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권익 보장에 앞장서는 일을 해왔다.

의사로서의 안정된 인생을 버리고 불안정한 현직 록 스타로 생계를 꾸리며 사회적 약자를 대표한 구청 정치에 참여한다고? 블라즈니는 설마 하는 의구심과 동시에 정치에 무관심해진 젊은층과 기성 유권자들에게 이런 이상주의자는 요즘 같이 각박하고 냉소적인 21세기 세상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참신함과 희망을 던진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블라즈니 맥주당 대표를 바라 보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시각은 극과 극이다.

청춘과 록 뮤직이라는 사회문화적 기호가 시사하는 참신함과 순진무구함 혹은 무모한 이상주의(idealism)라는 범 인류적 매력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2022년 가을 있었던 연방 대통령 선거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 상당수가 과거 사회민주당(SPÖ)과 녹색당(Die Grüne) 지지자들이었다. 과거 사민당의 지지부진함과 현 정권 내 녹색당의 성과에 실망한 지지자들은 이 두 원조 중립좌편향적 정당들이 전통적으로 기약해 온 공약들 — 가령, 여성 노동자 및 임금 조건 개선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보장, 자녀 교육 지원, 인권 강화 등 — 을 현대적 필요에 맞게 업데이트시켜 제시한 블라즈니의 메세지가 호소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2022년 연방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비엔나 도심에 맥주 분수를 설치해 만인에게 공짜 맥주를 나눠주겠다고 했던 그의 공략은 맥주라는 범 민주적 음료와 그가 표밭으로 호소하는 근로자 계층과 자유와 포용이라는 이상적 가치를 갈구하는 청년층 유권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또, 그가 청년문화를 연상시키는 삼 십 대 의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배경 때문일까. 

그의 또다른 지지층인 중장년 여성들은 올 가을 연방 국회 총선거에서 다시 그를 지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그를 정치적 경험이 없는 애송이라 부르며 그의 정치적 진정성을 의심하는 표층은 가톨릭 보수당(ÖVP)와 우익 자유당(FPÖ) 지지자들이다.

맥주당은 지금부터 약 3주 후인 4월 30일까지 당원 2만 명을 모집하고 당 운영 자금 120만 유로(우리 돈 약 17억 6천만 원)을 확보해야 블라즈니 대표가 오스트리아 국민의회(Natioanlrat) 선출 선거 출마 자격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맥주당은 일반 가입 당원들이 기부한 50만 유로(우리 돈 약 7억 4천만 원)를 모금하는데 그친 상태여서 과연 올 총선에서 블라즈니가 후보자 출사 자격을 충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소식이다. 

오스트리아 정계에서 선풍을 일으키는 블라즈니 맥주당 대표가 진지하고 정당성 있는 정당으로 인정받아 국회로 진입하려면 더 길고 인내 있는 활동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라즈니와 맥주당은 실망스럽고 뻔한 현대 정치 게임에 낙망해있던 비엔나 시민들이 한 조각 신선한 바람을 선사하며 일간지 정치 1면을 다시 들여보게 한다.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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